<이현석의 진료실 단상>

위염, 위궤양의 원인은 위산과다 때문이라는 것은 거의 불멸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던 시절이 있었다. 내과 교과서에 있는 “위산이 없으면 궤양도 없다(No acid, no ulcer)”라는 문구가 널리 회자되던 시절 호주의 한 의사가 여기에 의문을 품었다. 같은 식생활을 해도 자주 위염 혹은 위궤양에 걸리는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지는 것을 보고 위산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작용할 것이라는 가설 하에 위궤양으로 수술 받은 환자들의 조직에서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것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닥터 배리 마샬(Barry Marshall)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 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였고, 발견 초기에 이 균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인 비스무스를 투여함으로써 위궤양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었다.

지난 18일 대법원은 가톨릭대학교가 보건복지부장관과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의비급여 소송'에서 원심을 일부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즉, 1)진료행위 당시 요양급여비용을 조정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거나, 또는 시급성 등을 고려해 절차를 회피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 2)의학적 필요성 3)환자 동의 등 임의비급여를 인정할 수 있는 3가지 요건을 갖추었을 때는 임의비급여 진료행위가 정당하다는 조건부 인정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입증 책임은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 있지만, 처분의 정당성이 확보된 경우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 사정에 대한 주장과 증명은 상대방에게 책임이 돌아간다"는 이유로 요양기관이 임의비급여의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만일 배리 마샬 박사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위궤양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은 당시의 급여 기준에 위배되는 사항이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 비급여 투여를 해도 부당 진료라는 불명예 속에서 부당청구 금액 환수 및 행정처분을 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우리나라 의료가 선진국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급급하였기에 닥터 마샬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간 이식이나 협심증 치료를 위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리나라로 배우러 오는 시대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의학 수준을 행정규제가 쫓아가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의료 지식이 우리 의료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의사가 포함되었다 하여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과거에 만든 급여 기준에만 얽매여서 진료를 규제한다면 이는 의학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그리고 이번 판결의 바탕에는 소송의 당사자인 여의도 성모병원장이 라포르시안과 인터뷰를 통해 “가톨릭 병원으로서 도덕성을 바탕으로 진료를 해왔다. 이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에 병원 문닫을 각오로 소송에 나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도덕성이 전제되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10만이 넘는 모든 의사가 도덕성에서 완전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동료 의사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술을 강행하여 5년 이상 해당 분야의 내과학회, 외과학회 및 윤리학회와 대결 구도를 벌이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이 사안에 대해서는 많은 동료의사들의 반대와 해당 학회에서 수 차례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는 명료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보면서 새로운 형태의 진료에는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높은 윤리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번 판결에 불만을 갖는 일반 사회 여론도 만만치 않음을 감안하면 설사 이번 판결과는 관련 없는 사안이라도 비윤리적인 진료가 일단 사회문제화 될 경우 의사 집단이 받는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제는 누가 어떻게 특정 진료의 타당성과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는가가 된다. 새로운 의료 지식이나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행정을 전공으로 한 사람도 법을 전공으로 한 사람도 아니며 의사 면허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가가 가능한 유일한 집단은 해당 질환을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동료 전문가들인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치료를 할 경우 데이터를 공개하여 동료의사들에게 검증 받고(피어 리뷰)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런 노력은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사례도 백혈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최선의 치료를 다했고 그 결과 백혈병 치료의 전문기관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최소한 의료계 내에서는 비난의 여론이 없었고 그 결과 대법원 판결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현실은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심사하는 구조이다. 물론 해당 학회의 의견을 참고는 하지만 의견이 무시되었을 때 해당 학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런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동료의사들의 엄격한 학술적인 검증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자정능력이 확보될 경우에 대외적인 발언권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술적 검증뿐만 아니라 진료의 윤리성에 대해서도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

다행히 대한의학회 산하에 한국의료윤리학회도 있고 의협 내에도 윤리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많은 의사들이 징계를 원하는 회원들의 경우 대개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분노하는 정책을 내 놓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비도덕적인 진료를 하는 의사에 대한 징계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임의비급여에 대한 보도를 보면 의사를 대상으로 한 언론에서는 환영하는 논조인데 반해 일반 언론에서는 우려의 소리가 크다. 장기적으로 이런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술적으로는 의료와 인문학을 같이 다루는 학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 동료의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비과학적인 진료를 하는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진료에 대해서는 의료계가 단결하여 보호할 뿐 아니라 그 타당성을 적극 홍보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현석은?

198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4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수료 및 전문의199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06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2011년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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