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상호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화성에서 온 의사, 금성에서 온 환자’ 란 연중기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 기획은 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부정확하게, 혹은 잘못 알려진 의학적 지식을 짚어내고 올바른 의료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또한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전 미리 준비하거나 알아두면 병원 이용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의사가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입니다. 나아가 환자들이 의료진의 고유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상호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 의사-환자가 라뽀를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최근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온 허선희씨(가명)는 네살 난 아들이 열이 심해 동네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았다. 접수를 한 후 진료 대기실 의자에 앉다가 깜짝 놀랐다. 대기실 의자가 여기저기가 찢어진 것은 물론 언제 닦았는지도 모를 만큼 더러웠기 때문이다. 눈살을 찌푸릴 일은 또 있었다. 의원내 마련된 조그마한 놀이방으로 들어가려던 허씨는 다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놀이방 매트 위에서 노는 아이들의 양말이 너무도 더러웠기 때문이다. 매트를 자세히 보니 틈새마다 때가 껴있었고 플라스틱 미끄럼틀도 여기저기 먼지가 앉아있었다.소아과의 특성상 아이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거니 이해하려 해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치료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길 수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른 소아과를 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사온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근처에 마땅한 곳을 몰라 그냥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후 진료실로 들어간 허씨는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고 의사에게 아이의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가 아이에게 입을 벌리라고 한 후 얼굴을 가까이 대는 순간 허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의사의 입에서 담배냄새가 확 풍겼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가운도 언제 세탁을 했는지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이미 허씨의 귀에는 의사가 설명하는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실을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병원을 찾는 환자 또는 호보자들은 정신적으로도 불안하고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요소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때문에 방문한 병의원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병원 내 위생 및 청결상태는 당연히 환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시설의 화려함을 떠나서 깔끔하고 깨끗한 의료기관은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진료 대기실은 진료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진료 대기실에서 환자가 의료기관에 호감을 갖게 되면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났을 때 신뢰감을 높이고 보다 적극적인 치료의지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진료 대기실의 더러운 소파, 화장실의 악취, 여기저기 쌓인 먼지와 눌어붙은 때 자국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전부터 의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시설의 청결상태 만큼 중요한 것이 의료인의 위생상태다. 제한된 진료시간 때문에 환자가 의사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환자는 짧은 시간내에 의사가 자기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때 외관상 보이는 의사의 모든 것이 환자에게는 판단의 대상이 된다. 복장의 종류, 청결상태, 수염, 머리, 손톱, 심지어 냄새까지도 이에 속한다.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이나 편안한 복장은 의료인에 대한 전문가적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으며 진한 화장이나 향수 냄새도 환자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대상이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성누가(聖路加)국제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끼(日野原 重明) 이사장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의사소통 능력”이라며 “의사소통 능력에는 말과 동작 표정에 의한 것 뿐 아니라 의사 본인의 복장과 구두 관리 등 물품(Object)의 사용 방법에 의한 자기표현 방식, 즉 오브젝티스(Objectics, 물품학)까지 포함된다”고 말한다. 실제 성누가 국제병원의 남자 의사들은 항상 넥타이차림의 정장 위에 걸친 흰 가운의 모습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에 깨끗하지 않은 가운을 입고 어젯밤 마신 술냄새는 물론 담배냄새같은 입냄새까지 풍긴다면 환자들은 전문가로서 의사에 대한 신뢰를 갖기 힘들다. 특히 의사로부터 본인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의사의 지배적 인상은 당연히 진료에도 영향을 준다. 이미 의사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환자의 답변이 성실할 리가 없다. 성실하지 못한 환자의 답변에 의사는 또 의사 나름대로 불만을 갖게 되고 결국 최선의 진료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의료인에 대한 신뢰는 첨단 의료장비와 인테리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시설과 의사의 단정한 복장과 인상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도움말 : 대한신경정신과의사회 노만희 회장(정신과 전문의), 골드만비뇨기과클리닉 조정호 원장(비뇨기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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