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대국민 홍보·여론조사에 전력…복지부, 수술거부 대응책 마련 분주

병의원급을 대상으로 한 포괄수가제(DRG) 당연적용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를 저지하려는 의료계와 밀어붙이는 정부의 움직임도 한층 바빠지고 있다.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에 반대하는 의료계가 내민 카드는 적용 대상 수술을 연기하는 것이다.

당초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2일 의협 노환규 회장과 안과·외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의 개원의사회 회장이 모임을 갖고 다음달 1일부터 일주일간 수술거부에 들어갈 것을 잠정 결정했다. 그러나 수술거부에 따른 여론이 악화되자 대국민 여론조사를 거친 후 국민의 뜻에 따라 향후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론조사 후 국민들이 포괄수가제에 반대할 경우 환자 동의서를 통해 응급상황이 아닌 한 5개 질환의 수술을 일주일간 연기한다는 것이 의협의 방침이다.

의협은 이와 관련 이미 법조계로부터 환자에게 동의서를 받고 수술연기를 할 경우 문제가 없다는 법률해석까지 받아놓은 상태다.

대국민 여론조사와 관련 일부 불안해하는 회원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노 회장이 직접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반대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반대 홍보에 사용될 자체 모금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 홈페이지와 의사 커뮤니티인 ‘닥플’을 중심으로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성금모금이 20일 현재 모금액 1억원을 넘어섰다.

의협은 모금액을 언론 매체를 통한 대국민 홍보와 대회원 안내자료 및 대정부 홍보활동, 토론회 및 서명운동 등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데 사용할 방침이다.

이밖에 전국의사총연합의 젊은 의사들이 중심이 돼 의대생 및 전공의를 대상으로 ‘전국 의대생 각성 프로젝트(MAP, Medical student Awakening Project)’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들은 지난 7일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을 시작으로 연세대의대, 경상대의대 등 지난 18일까지 총 6개 의과대학 의대생 및 전공의를 대상으로 포괄수가제 알리기 강연을 마친 상태며 지속적으로 강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복지부-공단-심평원, 삼각 협력체계로 의료계 반발에 대응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의료계의 수술연기 등에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의료계의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반대에 대응하는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조직간 상호 협력 및 지원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다.

심평원은 포괄수가제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포괄수가제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한 전방위 지원사격에 나섰다.

심평원은 원내 협력체계를 공고히 해 포괄수가제 관련 이슈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총괄지원, 대외홍보, 법무지원 등 3개 팀으로 구성된 비상대책반을 지난 18일 구성했다.

특히 법무지원팀은 의료계 일각에서 준비 중인 수술연기에 관한 법적 검토 등 법률적 부문을 총괄할 예정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수술연기와 같은)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진료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끔 검토 및 지원을 할 것”이라며 “다만 이를 통해 액션을 취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비상대책팀 구성에 있어서 복지부의 사인(sign)은 없었다는 것이 심평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고시는 이미 나왔고 포괄수가제를 진행해야 하는데 한쪽에서 반대하니까 심평원의 읜지로 구성한 것”이라며 “복지부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 지원하는 차원이지 절대 주체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심평원은 지난 18일 오전 본원에서 포괄수가제 시행과 관련 전국 지원장 회의를 개최하고 포괄수가제 관련 진행상황 공유 및 성공적인 제도 시행을 위한 각 지원의 역할과 진료거부 등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건보공단도 지난 20일 전국 지사장회의를 열고 포괄수가제 병·의원 당연적용에 따른 대비책을 논의했다.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지난 회의에서 의협 등 일부 의사단체에서 주도하고 있는 수술연기 움직임 등과 관련해 지사장들이 직접 병․의원을 방문해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의 배경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을 당부했다.

공단은 보험급여실 산하에 종합상황반을 설치하고 심평원, 보건소 등과 합동으로 구성된 점검팀을 통해 전국 안과 병․의원을 방문해 포괄수가제 참여를 독려할 방침이다.

공단 보험급여실 정영숙 실장은 “의협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해서 진료거부 할 경우 실질적인 손해를 보는 쪽은 가입자다”라며 “의료계에 대응한다는 차원이 아닌 각 의료기관의 의사들에게 포괄수가제를 제대로 안내하고 설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그 일환으로 지난 20일 전국 모든 보건소에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시행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 첨부된 자료를 살펴보면 ▲포괄수가제 오해와 진실 ▲포괄수가제 올바른 정보 ▲포괄수가제 질의응답집 ▲포괄수가제 의료인용 설명자료 ▲포괄수가제 몇가지 우려에 대한 답변(다음 아고라) 등 의료인을 대상으로 포괄수가제를 설명하는 가이드 라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설득을 가장한 우회적 압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공단에서 찾아오면 개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며 “말이 교육이고 계도지만 실질적으로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윤 회장은 “공단이 심평원 및 보건소 등과 조직적으로 움직여 직접 대면하며서 소통하겠다는 것은 결국 우회적인 압박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단의 현장 방문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의협 송형곤 공보이사는 “포괄수가제는 의료의 질을 떨어지는 원인이다. 이 때문에 의사들의 양심적 진료를 저해하고 직업윤리 흔들게 될 것”이라며 "공단이 아무리 현장을 방문해 의사들을 설득한다고 해도 설득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보건소 관계자들도 의료기관 현장방문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

복지부의 공문이 하달된 지난 20일 서울의 모 보건소 관계자는 “공문과 함께 보내온 자료를 보면 포괄수가제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며 “의사 상담시 대답할 수 있도록 보건소 직원 교육용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지역의사를 대상으로 포괄수가제 설명회 등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실제로 의사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포괄수가제를 설명한다고 해도 설득력을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포괄수가제의 시행 전망에 있어서도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의료계는 의협이 추진하는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료계 한 인사는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협의 행보가 판가름 날 것”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포괄수가제 뿐 아니라 의협의 향후 시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박민수 과장은 “전체의사들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협 집행부의 생각일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는 문제없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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