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일(여의도성모병원장)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8일 의학적 임의비급여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요양기관이 임의비급여 진료행위에 대한 ▲시급성 ▲안전성과 유효성 ▲환자동의 등의 전제조건을 입증한다면 부당하게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의료계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불법으로만 간주되던 의학적 임의비급여가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되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판결이 나기까지 5년 넘게 법정 다툼에 시달려야 했던 여의도성모병원 측은 오히려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료행위에 있어서 도덕성과 진정성을 회복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 병원장으로부터 임의비급여 판결의 의미를 들어봤다.


- 대법원이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여의도성모병원에 주는 의미는.

“대법원의 판결은 의료계가 관련부처와 의논해 환자 생명권을 위해 제도적 틀을 만들어 선택적으로 잘 하라는 의미라고 본다. 병원으로서는 판결 결과를 이런 의미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도덕성을 인정받은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다. 가톨릭 병원으로서 도덕성을 바탕으로 진료를 해왔다. 이 부분를 건드렸기 때문에 병원 문닫을 각오로 소송에 나선 것이다.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 목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제도권 틀 안에서 중증 및 위급한 환자의 생명권에 관련된 부분만 개선하자는 것이 이번 소송의 취지였고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파기 환송심에서 병원측이 스스로 임의비급여 진료행위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 현재 병원 내부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시급성, 안전성 및 유효성, 환자동의라는 큰 카테고리는 이미 대법원 판결에 나와있다. 카테고리의 정의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급하고 불가피한 경우 '위급'의 정의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입증 방법과 범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백혈병 환자가 미열이 조금 날 경우 감염요소가 된다는 이유로 병원은 시급성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 복지부는 미열이 무슨 시급성이냐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환자 한 사람에 대해 열건이 넘는 비급여 진료행위도 있다. 사실 판결문에는 건마다 다 입증하라는 것인지 환자 한명당 한건만 입증한 것인지에 관한 명시가 없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제출돼 있는 자료를 쌓으면 사람 키의 두배 정도에 이른다.”

-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사건발생 시점인 2006년부터 그 이전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하지 않나.

“그것은 법원이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골수천자 바늘의 경우 현재 급여로 전환됐으나 사건 발생 시점인 2006년 당시에는 비급여 항목이었다. 급여로 전환됐다는 것은 타당성이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를 어느쪽으로 해석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병원으로서는 유효성에 확대 해석을 요구할 것이고 고법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 이번 판결이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지금까지 임의비급여는 법정비급여를 제외하고 전부 불법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최초로 단서조항을 통해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다만 이를 의사가 임의로 판닪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의료계의 승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성모병원의 주장이 전체 진료행위에 대한 임의비급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중증 및 응급환자에 대한 부분만 인정해 달라고 낸 소송이다. 이를 단어 그대로 받아들여 의료계가 각을 세운다면 관련부처와 평행선을 달리는 것밖에 안된다.”

- 복지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원칙적으로 임의비급여가 불법이란 점이 재확인됐다는 입장이다. 또 병원 실사를 강화해 과잉진료를 막는 것만이 임의비급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인정되지 않았던 부분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일부 의사나 병원이 이를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생각인 것 같다.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조직인데 의료계와 싸우겠다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과잉진료를 우려해 미리부터 강하게 의료계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모병원은 관을 존중하고 제도권 틀안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자는 쪽이지 절대 의료의 기본적인 틀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환자 생명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한다.”

-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대법원의 판결은 의료계의 의견을 전부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인 동시에 정부에서 정한 틀을 맘대로 임의해석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본다. 의료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환자 생명권과 건강권에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번 판결은 누구의 손도 들어준 것이 아니다. 환자의 생명권과 관련해서는 누구도 일방통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다. 일단 이 판결을 계기로 건강보험의 틀을 건들지 않으면서 환자에게 이익도 가고 위급한 상황에서 의사를 믿을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복지부나 심평원 등과 의논해서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입증받을 수 있는 관리기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에는 전체를 급여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판결은 그 중간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다. 판결을 확대 적용하는 것에 대비한 심사평가기구와 사후 심의기구도 필요하다. 보건당국과 의료계가 머리 맞대고 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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