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레지던트 3년차 이상 당직 의무화에 반발 고조…"거의 불가능한 인력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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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 전공의가 응급실 당직을 서도록 하는 내용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국내 응급의료 현실을 너무 동떨어져 있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높다.

앞서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장은 비상진료체계의 유지를 위해 각 기준에 따라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당직전문의를 둬야 하며 응급의료기관이 수련병원인 경우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전문의에 갈음할 수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 및 전문응급의료센터는 내과ㆍ외과ㆍ흉부외과ㆍ정형외과ㆍ신경외과ㆍ소아과ㆍ산부인과 및 마취과의 전문의 각 1인 이상, 지역응급의료센터는 내과ㆍ외과ㆍ소아과ㆍ산부인과 및 마취과의 전문의 각 1인 이상을 당직전문의로 둬야 한다.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구성자 사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양한 종류의 비상진료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적절한 자격을 가진 당직 전문의 구성은 필요하다”며 “응급실에서 뇌출혈과 같이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 신속한 진료 및 수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시행에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지방에 위치한 병원일수록 개정안에 대한 불만이 컸다.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지방 B대학병원 관계자는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관련해 병원 내부적으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어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병원은 대학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가 부족하고 특히 산부인과는 아예 전공의가 없다”며 “개정안 시행 이후 응급의료센텨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경북에 위치한 S병원도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때문에 고민이 깊다.S병원 관계자는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인력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며 “개정안에서 요구하는 인력 기준 충족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정안이 현재의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마련에 고심 중”이라며 “그러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인력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시행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인 K병원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돼는 시행규칙”이라며 “우리 병원은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가 한 명뿐인데 혼자서 24시간 내내 진료와 수술, 당직까지 감당하란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가뜩이나 전문의가 부족한 진료과로서는 당연히 당직을 기피하려 할 것”이라며 “당직을 유지하려면 각 진료과마다 최소 3~4명의 전문의가 필요한데 이를 충원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병원의 경영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적자구조의 응급실 운영과 중소병원의 경영악화, 의료인력 수급난 등이 현재 상황”이라며 “개정안에 따른 당직전문의 운영은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지키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정 위원장은 “특히 소아청소년과는 대부분 개원가에 집중돼 있어 병원에서 인력을 충원하기가 어렵다”며 “충원하더라도 과도한 인건비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 15일 대한중소병원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백성길 신임 회장은 “지방거점 중소병원들은 시행규칙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전문의 및 전공의 인력구조상 응급센터를 유지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라며 “기준에 준하지 못한 많은 수의 병원들이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반납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준에 준하지 못하는 병원이 응급의료센터를 지정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공동대표는 “일부 병원에서 전문의가 부족하거나 전공의 지원이 없어서 응급실 당직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며 “그러나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진료과대로 상시 진료가 가능해야만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을 수 있고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규정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응급의료센터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기준에 따라 하향지정을 받거나 또는 지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위해 시행규칙에서 명시한 당직 전문의 구성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복지부 응급의료과 구성자 사무관은 “응급상황 발생시 빠른 시간내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할 것”이라며  “시행에 있어 의료계의 어려움은 알고 있다. 아직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상황과 여건에 따른 의견을 주면 최대한 검토해 수용여부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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