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내에서도 해석 엇갈려…법조계 "관련 처벌조항 없어 강제력 의문"

대한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에 대한 반발로 수술중단 카드를 꺼낸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필요하다면 의료법에 따라 의협의 임원 교체까지도 검토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복지부 박민수 보험정책과장은 지난 14일 오전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포괄수가제 도입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 갈등’을 주제로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과 설전을 벌였다.

이날 토론에서 박 과장은 의협의 진료거부에 대해 “불법을 획책하는 현 의협 간부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즉각 성명서를 통해 “박민수 과장의 발언은 개인적인 발언이 아니라 복지부장관이 의협 임원의 교체를 명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을 배경으로 이뤄진 복지부 공식 입장으로 이해된다”고 반발했다.

의협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의료법 32조'다.

의료법 32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중앙회나 그 지부가 정관으로 정한 사업 외의 사업을 하거나 국민보건 향상에 장애가 되는 행위를 한 때 또는 제30조제1항에 따른 요청을 받고 협조하지 않은 경우 정관을 변경하거나 임원을 새로 뽑을 것을 명할 수 있다. 

의료법 32조의 근거가 되는 30조에도 중앙회는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의료와 국민보건 향상에 관한 협조 요청을 받으면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민수 과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런 발언을 할 당시 의료법에 이같은 조항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며 “(복지부 차원에서) 의협 임원 교체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며 국민의 상식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과장은 “의협의 진료거부가 현재 결정된 것은 아니고 협박을 위한 위협 수준으로 보고 있다”며 “의협이 진료거부를 실행하거나 또는 실행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면 정부로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료거부는 공정거래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의료법 32조에 이같은 권한이 있다하니 필요하다면 이 조항을 행사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같은 복지부 내에서도 의료법 32조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협이 진료거부라는 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협의 임원 교체 지시가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처럼 파국이 아닌 상황에서는 개별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위반시 처벌 조항이 없는 조항을 적용하려다 자칫 복지부의 모양새만 우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이 과장은 “차라리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형사처벌 또는 과징금 부과하는 것이 훨씬 더 실효성이 있다”며 “공정거래법 외에도 진료를 거부한 의료기관에 대해 의료법을 적용해 면허정지 등을 조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에도 의사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자 검찰은 의료계 집단폐업을 주도한 혐의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위반, 형법상 업무방해, 의료법 위반을 적용해 당시 김재정 의협회장을 구속수감하고 신상진 의쟁투 위원장, 사승언 의쟁투 대변인겸 운영 위원, 배창환.박현승 의쟁투 운영위원 등 의료계 지도부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의협은 만일 복지부가 의협의 임원 교체를 명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협 윤용선 보험전문위원은 “회원들의 공정한 선거로 선출된 전문가 단체의 수장을 법에 의해 교체하려는 복지부의 생각에서 의협을 신하로 보는 적나라한 시각이 드러난다”며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책적 목적을 위해 전문가 단체를 무시하려는 생각은 정부이기를 포기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의협 임원 교체를 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윤 전문위원은 “만일 복지부가 의협 임원을 교체하려할 경우 의사를 의사로 인정하지 않고 노예나 하수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의사들이 더 이상 의사로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의료법 32조에 따른 처벌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실효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법인 대세 오승준 변호사는 “복지부 장관이 의협 임원 교체를 명할 경우 일단 법조항 상에는 이를 따라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며 “그러나 이와 관련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법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처벌조항은 없는 대신 구체적으로 벌금을 가한다던지 또는 시정조치 등 강제성이 없는 행정처분을 내릴 가능성은 있다”며 “조항 자체가 의협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투표로 선출된 의협회장을 복지부가 교체하는 부분 역시 위헌적 요소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오 변호사는 “의료법 32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임원에는 의협회장도 포함된다”며 “회원들의 투표로 선출된 의협회장을 강제하면 안되기 때문에 위헌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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