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상근심사위원이 담당…복지부 "강의 맡은 전문가 생각…공식 입장 아니다"

2012년 4월 실시된 신규 공보의 중앙직무교육 자료집에 수록된 진료비 지불제도 비교 표.

포괄수가제(DRG) 강제적용을 놓고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신규 공중보건의사들의 직무교육을 위해 활용하는 교재에 ‘포괄수가제의 단점은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내용이 수록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포괄수가제 도입으로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면 크게 우려하고 있지만 그동안 복지부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의료의 질 하락이 없다고 반박해 왔다. 하지만 정작 복지부가 공보의들의 교육용으로 만든 교재에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지난 14일 공보의 중앙직무교육 자료집을 확인한 결과, 2011년판은 물론 2012년판에도 진료비 지불제도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포괄수가제의 단점은 의료의 질 저하’라고 명시돼 있었다. 

올해 공보의 증앙직무교육 자료집을 보면 포괄수가제는 경영과 진료 효율화, 진료비 청구 간소화라는 장점을 가진 반면 단점으로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 DRG 코드 조작 가능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돼 있다.

문제는 올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에 대한 합의가 잠정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4월에 진행한 신규 공보의 교육 시간에 포괄수가제의 단점을 의료의 질 저하라고 알려준 것이다.

올해 신규 공보의 중앙직무교육은 지난 4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76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포괄수가제의 단점을 의료의 질 저하라고 명시한 부분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의료의 질이 올라가는 측면도 낮아지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자료집에 나온 내용이 복지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라며 “복지부는 공보의 직무교육을 한국건강증진재단에 위탁하고 있다. 재단이 공보의 강의를 맡은 전문가에게 원고를 받아 자료집을 만든다. 결국 그 내용은 강의자의 생각이다. (복지부가) 거기까지 감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건강증진재단은 복지부의 위탁으로 신규 공보의 직무교육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공보의 직무교육은 보건의료정책 등 각 부문별로 전문가를 위촉해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놀랍게도 공보의들에게 포괄수가제 등 진료비 지불제도를 교육한 강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심사위원이었다. 

건강증진재단 관계자는 “교육 분야별로 여러 강사들을 초빙하고 있다. 지불제도 파트는 심평원에 의뢰했다”며 “하지만 재단은 전문가를 선정해 자료집을 만들고 교육을 진행하는 작업만 할 뿐이다. 심평원은 전문가집단인데 우리가 감수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진료비 지불제도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 의료 현황을 공보의들에게 교육한 심평원 관계자는 자료집에 수록된 포괄수가제의 단점 등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 다음 아고라 사회토론방에 올려진 '복지부, 포괄수가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라는 글.

중앙직무교육 교재의 지불제도 관련 내용을 담당한 심평원 K모 심사위원은 “공보의 자료집에 (포괄수가제의 단점은 의료의 질 저하라는) 내용이 남아 있어 (포괄수가제 실무를 맡고 있는) 심평원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교육하는 것은 물론 자료집 내용은 일부 삭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괄수가제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는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우려했던 내용이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는 심평원 평가파트 등에서 모니터링해 단점을 보완한 것”이라며 “특히 최근 미국 논문에서는 의료의 질 하락 우려가 없다는 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얼마전 열린 포괄수가제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포괄수가제를 시행할 경우 의료행위가 줄어들지 몰라도 의사의 자존심상 의료의 질은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해 공보의 직무교육 자료집에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된 ‘아고라’에서는 네티즌의 반발이 거셌다.

한 네티즌은 “의사들에게는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고, 국민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 “복지부 행태에 치를 떤다”고 쏘아붙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복집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명시해놓고 의료의 질을 위해 포괄수가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다니“라며 ”돈을 덜 내는데 어떻게 의료의 질이 좋아지겠냐“고 반문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디미디어에서도 포괄수가제의 단점을 지적한 공보의 자료집 사건이 의사들의 공분을 샀다.

한 의사는 “복지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행위별수가제와 차등수가제로 과잉진료를 커버했듯이 (앞으로는) 포괄수가제와 또 다른 제도로 질 관리를 할 것”이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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