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칼 포퍼 지음 / 이한구 옮김 / 민음사 펴냄

회의주의운동을 주도하고 계신 분들의 책들이 소개되어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와 <과학의 변경지대>, 케이스 스타노비치의 <심리학의 오해> 등이 생각납니다. 우리 사회에도 회의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의주의 사조를 주도하고 계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 강력하게 추천하신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I>을 소개하려 합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의 하나로 지목되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칼 포퍼는 빈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역사, 철학, 음악 등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4년 <탐구의 논리>를 통하여 과학철학 분야에서 ‘반증가능성’의 방법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게 되는데, 포퍼에 의하면 과학적 이론은 먼저 가설의 형태로 제시된다고 합니다. 한 이론의 과학적 성격이란 그 이론이 언제나 경험에 의하여 반증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하는 반증가능성의 이론을 <탐구의 논리>에 담았다고 합니다. 이는 1963년 <추측과 논박>을 통하여 “한 이론의 과학적 자격의 기준은 그 이론의 반증가능성, 반박가능성, 테스트가능성이다.”라고 정리되는데, 한 이론이 과학적인 것으로 분류되려면, 그 이론에 모순되는 관찰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퍼의 철학적 명제는 당연히 과학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I>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통제된 사회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오랜 시민운동이 결실을 맺게 되면서 많은 나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믿고 있는 현재에도 우리사회의 성격이 선명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민주공화국이라고 정의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진정 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국민들이 열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와는 다른 체계를 추구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표적 철학자 칼 포퍼가 추구하는 열린사회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I>은 194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구상은 진즉부터 하고 있었지만, 히틀러와 그 추종세력들이 유럽대륙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을 보면서 집필을 서둘렀다고 합니다. 즉, 히틀러가 추구하는 목표가 바로 자유민들의 구속하는 대표적인 전체주의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포퍼는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대 청소년 시절에는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포퍼는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숨겨진 전체주의적 성격을 발견하고 결별하였다고 합니다.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자유민의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사상사적 배경이 마르크스, 헤겔을 거쳐 플라톤에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로 우리사회가 열병을 앓은 바 있습니다. 샌델교수는 “사회가 정의로운 것인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고 말하고, 정의를 이해하는데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정의는 무엇인가?>를 읽어보면 독자들의 생각을 유도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자신이 준비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는지 궁금합니다. 독자 가운데는 그를 ‘소크라테스를 흉내내는 공동체주의자’라고 규정한 분도 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철학의 흐름 속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인 행복의 극대화, 자유, 미덕의 추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안고 있는 특성과 한계점들을 지적했다고는 하지만, 특히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롤즈의 정의론를 비롯하여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이클 샌델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사회가 정의로운지를 물었다고 한다면,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정의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원조의 지위를 부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열린사회와 그 적들> 1부에서 플라톤이 주창한 계급의 존재를 전제로 한 참주정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 등 역사주의적 사상가를 이어받아 역사적 발전의 법칙을 세웠는데, 우주적 힘이 작용하는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변화는 타락이나 부패 또는 퇴보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달리 인간의 도덕적 의지로 이런 역사적 운명의 법칙을 깨트릴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정치가 퇴화하는 과정을 보면 완전한 국가 뒤에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귀족들이 지배하는 명예정치체계가 오고, 두 번째로 부유한 문벌이 지배하는 과두정치체계가 오며, 다음으로는 방종을 의미하는 자유가 지배하는 민주정치체계가 탄생하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종말단계인 참주정치가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국가에서는 세 종류의 계급, 즉 수호자들과, 그들의 무장한 보조원이나 군인, 그리고 노동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회를 유지하는 힘은 공산주의와 수호자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를 들면 영아살해와 같은 우생학적 정책들이 시행되고, 계급간의 이동은 불가능한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미국 작가 로이스 로이의 소설 <기억전달자>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체계에서 평등주의라는 개념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이 ‘법 앞에 평등’과 같은 정의의 개념에 대한 논의를 회피했다고 포퍼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률>에서 플라톤은 평등주의에 대하여 플라톤은 “동일하지 않은 자에 대한 평등한 대우는 불공평을 초래한다.(163쪽)”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플라톤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동일한 자에게는 평등을, 동일하지 않은 자에게는 불평등을”이라는 공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자기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덕이 ‘정의’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차별화된 계급 혹은 집단을 전제하는데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플라톤의 정의는 공리주의적이며 전체주의인 것으로 사회 구성원의 모든 것, 심지어는 지배자의 진실을 알 권리, 진리를 말하도록 요구하는 특권까지도 위압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퍼는 1부를 통하여 플라톤의 탐미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하면서, 열린사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라 부르고자 한다.(293쪽)”닫힌사회와 열린사회의 특징을 비교해보면, 열린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투쟁을 하는 반면, 닫힌사회에서는 계급투쟁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견해서는 닫힌사회가 더 인간적이고 우월한 것처럼 비칠 수 있으나, 이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닫힌사회에서는 국가가 크든 작든 시민생활의 전체를 규제하려 든다는 특징이 있고, 반면열린사회에서는 이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열린사회에서는 행위의 규범들이 고정불변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는 약속의 체계에 불과하며, 개인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독자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열린사회를 지지하는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기원전 430년경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한 반면, 80년 뒤에 아테네의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을 비교해 보면 포퍼가 플라톤을 비판하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으끔가는 원칙은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지도자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습관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열성적으로 하는 것이든 장난삼아 하는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전쟁 때나 한창 평화로운 때에 그의 지도자에게 눈을 돌려 그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사소한 일까지도 지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만 잠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씻거나 먹거나 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랜 습관에 의해 결코 독립적 행동을 꿈꾸지 않고 전혀 그런 짓을 할 수 없게 되도록 자신의 영혼을 길들여야만 한다.”

닫힌사회로부터 열린사회로 이행하게 된 것은 기술과 사업의 발달에 기인한다고 포퍼는 보고 있지만, 기술의 발달만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열린사회를 향한 효과적인 행위는 이성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비판과 논증을 통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합리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게 될 것인 바, “합리주의란 비판적 태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태도요,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이다.(617쪽)라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1부는 1998년에 처음 번역하여 소개한 것을 2006년에 특히 원저의 방대한 양의 주석까지 번역하여 보완한 개정판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2부는 아직 보완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부에서는 근대철학에서 열린사회를 반대하는 주장을 대표하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적 논리에 대한 포퍼의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번역을 하신 이한구 교수님은 읽는 사람들이 포퍼의 분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장의 앞부분에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을 붙였고, 포퍼의 철학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도록 ‘포퍼의 생애와 철학’이라는 해설을 책 뒤에 더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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