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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판결, 긴 논란…건보법 '제33조 2항'을 위한 랩소디심판청구 기간 지나서 각하되고, "기본권 침해 가능성 없다" 이유로 기각되고
헌법재판소 대법정 모습.

“다음은 2009헌마 299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 제 2항 등 위헌확인에 관한 건입니다.……(중략)이상의 건에 대한 판결주문입니다. 청구인 경만호, 신원형, 정국면, 송우철, 좌훈정의 심판청구를 각 각하한다. 청구인 조남현, 이은혜의 심판청구를 각 기각한다. 다음은….”

길어야 3~4분이었다. 지난 31일 열린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서 이강국 재판장이 건강보험 재정통합의 위헌 심판청구 소송건에 대해 판결 이유와 주문을 말하는데 걸린 시간은.

이날 오후 2시경부터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헌재가 판결한 사건은 모두 32건이었다.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소송건은 21번째로 다뤄졌다.

잔뜩 긴장하며 헌재 2층 브리핑룸에서 대형TV 모니터를 청취하던 취재 기자들은 일순 당황했다. 이강국 재판장이 판결 이유와 주문을 일사천리로 읽어나가자 미처 다 받아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판결 이유와 주문을 다 받아 적지 못했다. 급히 공보관실로 달려가 판결문을 요청했다. 사건 순서대로 판결이 시작되고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확인한 헌재의 최종선고는 짧은 시간만큼이나 허무했다. 헌재의 이날 최종선고가 나기까지 3년여 가까이 논란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서 보도한(관련 기사 헌재, 건강보험 재정통합 '합헌' 결정』)것처럼 경만호 전 의협회장 등 7명의 청구인이 제기한 건강보험법 제33조 제 2항 등의 위헌소송 건은 각하 및 기각 판결로 마무리됐다.

7명의 청구인이 제기한 위헌소송 대상은 건강보험법 ▲제33조 제2항(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 통합 규정) ▲제 62조 제4항 및 5항(직장가입자 및 지역가입자의 월별 보험료액 산정 기준) ▲제 63조(보수월액 규정) ▲제 64조(보험료부과점수 규정) ▲제 65조 제3항(지역가입자의 보험료부과점수당 금액 규정) 등이다.

핵심은 건강보험 재정통합으로 인해 직장인가입자인 청구인들의 재산권과 평등권 등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날 판결에서 청구인에 따라 각하와 기각이라는 2가지 결정을 내렸다. 각하 결정은 경만호 , 신원형, 정국면, 송우철, 좌훈정 등 5명의 청구인에 대해서였다.

각하 결정의 이유는 이렇다. 이강국 재판장은 “경만호 등 5명의 심판청구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시행된 후 최초로 직장가입자가 된 시점으로 1년이 지나 심판청구에 이르렀으므로 청구기간을 도과해 부적법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재판장의 판결 이유를 듣던 기자는 ‘도과’라는 법률용어가 너무 생소했다. 사전에도 없는 순수한 법률용어였다. 찾아보니 위헌 심판청구를 제기할 수 있는 제척기간(1년)이 지났다는 의미였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명시한 건보법 제 33조 제2항이 시행된 후 그 규정의 적용을 받고 나서 1년이 경과해 위헌 심판청구를 제기했기 때문에 헌재의 본안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8일 헌재에서 최종 공개변론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경만호 전 의협회장.

허무한 결정이다. 지난 3년여간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위헌소송이 기본적인 절차적 적법성도 갖추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청구인들이 이번 위헌소송을 위해 법률적 대리인까지 두고 소송 과정을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외에 조남현, 이은혜 청구인이 제기한 위헌소송건은 다행히(?) 절차적 적법성을 갖춰 본안심의 대상이 됐다. 헌재는 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판결 이유를 보면 ‘건보법 제33조 제2항은 재정통합을 통해 경제적 계층의 형성을 방지하고 소득재분배와 국민연대의 기능을 높이고자 하는 것으로서 입법형성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다.

여기에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율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점,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런 이유로 헌재는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직장가입자인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 위헌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8명의 재판관 중 김종대, 이정미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처음엔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건보법 제 33조 제2항 등의 심판청구는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 및 직접성을 결여해 부적법하므로 심판청구를 각하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아예 건보 재정통합으로 직장가입자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주장 자체가 심판청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더욱 강경한 취지였다.   

사실 헌재의 이런 결정은 작년 12월 8일 열렸던 최종 공개변론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사안이었다. 당시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측 변호인단은 심판청구의 핵심인 직장과 지역가입자간 재정통합을 규정한 ‘건강보험법 제33조 제2항’ 그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 보험료 부과체계의 형평성 문제만을 집중 부각시키는 변론에만 집중했다. 청구인 측의 변론을 들은 재판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건을 위헌심판 청구대상으로 봐야 할 것인지 여부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소송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앞서 지난 2000년에도 거의 유사한 사안으로 위헌 심판청구가 제기됐고,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더 이상 이를 둘러싼 논란을 제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위헌소송 관련해 “지속성을 담보하면서도 가입자, 공급자, 정부 모두가 만족하는 새로운 판을 짜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호언장담한 경만호 전 회장은 허세를 부린 꼴이 됐다. 짧은 판결, 긴 논란만 남긴 채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 논란은 머잖아 시나브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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