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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바보야, 문제는 지불제도가 아니야"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2.05.3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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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7월부터 백내장과 맹장수술 등 7개 질병군에 대해서 병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포괄수가제라는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를 강제 적용할 예정이다.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려는 배경에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가 모든 의료문제의 ‘악의 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과잉진료가 야기되고 건강보험 재정이 위협받고, 국민들의 진료비 부담이 늘어나는데 행위별 수가제가 단단히 한몫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런데 의료계는 포괄수가제 도입이 영 불만이다.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를 시행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도 못내 의심스럽다. 정액제 방식의 포괄수가제를 통해 의료행위를 통제하고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수가에 대한 불만이 높다. 포괄수가제를 하면서 비급여 부문까지 포함했는데 그 수가 수준이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의료수가가 원가에 못 미치는 데 비급여까지 포함한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원가절감을 위해 과소진료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포괄수가를 하려면 중증도별 환자 분류체계를 더욱 세분화하고, 적정수가를 책정한 다음 시행하자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 부분이다. 과연 의료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사실인가. 그러면 대체 적정수가를 얼마로 책정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의료수가가 원가보존율 이하라는 주장의 근거는 사실 정부기관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2006년 말 '상대가치점수 개정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심평원이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만들어졌다. 연구를 담당한 서울대 경영연구소는 전국 병·의원 127곳을 대상으로 회계조사를 실시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원가를 추정했다.

당시 심평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과의 급여행위 원가 총합은 14조1,483억원인데 반해 보상수가 총합(급여수입)은 10조4,620억원으로 원가 보전율이 73.9%로 파악됐다. 진료과별로는 소아과의 원가보전율이 34.2%로 가장 낮았고, 진단검사의학과(45.9%), 방사선종양학과(47%) 등의 진료과도 원가의 50%에 못미쳤다. 다만 비급여 행위를 포함할 경우는 기관당 연평균 원가보전율이 104%까지 높아졌다.

이보다 앞서 최선정 전 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 도입 직후인 2000년 8월 “수가가 원가의 80% 수준에 불과하므로 2002년까지 단계적으로 원가의 100% 보존을 해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굳이 심평원의 연구나 전직 복지부 장관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국내 건강보험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저부담-저수가-저급여' 체계를 떠안고 출발했다. 물론 그 이유는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을 게을리 하고, 의료 부문에 대한 예산 투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보험제도 확산에만 최우선 목표를 두고 국민들의 보험료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저수가-저부담 체계를 설계한 측면도 강하다.

이런 저수가-저부담-저급여 체계는 초기에 건강보험제도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은 폐해도 만만찮았다. 수가에 따른 급여행위로 적정 수익을 담보할 수 없었던 의료기관들이 비급여 진료를 양산했고, 박리다매식 과잉진료를 촉발시켰다. 특히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관행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의약품 약가 거품의 고마진 중 일부가 불법 리베이트로 의료기관과 의사들에게 돌아갔다. 정부가 사실상 이런 불법적 관행을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나면서 이러한 ‘3저 시스템’이 이제는 국내 의료환경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 확대에 따른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났고, 약값 거품과 리베이트 관행이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약가를 크게 낮추고 불법적 리베이트 근절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에는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다 좋다. 약가 거품을 없애고 리베이트를 근절하려는 취지에도 공감하고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의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그렇다면 ‘저수가-저부담-저급여’ 체계도 함께 손을 봐야 한다.

3저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약가를 낮추고 리베이트만 뿌리 뽑고, 진료비 지불제도만 바꾸면 상황은 나아질까.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되레 그동안 정부가 방치해온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의료서비스 공급자에게만 그 책임을 돌리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의료계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대증요법엔 한계가 있다. 질병의 근원을 찾아 근본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이유로 적정 보험료 인상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적정 보험료 부담을 기반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고 이를 통해 적정 수가를 보장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의료서비스 공급자만 쥐어짜는 정책으론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 확립은 요원하다. 결국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만 늘어나고 의료서비스의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3저 시스템 속에서 포괄수가제라는 새로운 지불제도를 도입하면 비급여 진료행위마저 막혀 의료계가 우려하듯 원가절감 차원의 과소진료가 발생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다. 최종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문제 해결의 키는 결국 가입자들이 쥐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들이 적정 보험료 부담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는 적정 보험료 부담이란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입자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니다. 기업과 국가도 함께 나눠서 지게끔 규정돼 있다. 가입자가 '1'을 더 내면 건강보험료 재정은 추가로 '2'가 더 생기는 구조다. 가입자가 보험료 부담에 인색하면 기업과 국가도 당연히 그 부담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며칠 전 한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서 “의료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쳤다면 병원들이 벌써 다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병원들이 버젓이 운영될뿐더러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복지부 관료의 발언은 그래서 위험하다. 시한폭탄과 같은 ‘저수가-저부담-저급여’ 체계를 짐짓 모른 체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의료체계에서 불거진 모든 책임의 근원은 제도를 잘못 설계하고 방치한 정부에 있음을 외면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지불제도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보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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