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렉스의 불멸의 삶 / 레베카 스쿨루트 지음 / 김정한과 김정부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여기 소개하는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Book소리]코너의 독자 한분께서 추천해주신 조금 특별한 경우입니다.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리뷰로 끝낼 것인가 [Book소리]에서 같이 고민해볼 것인가를 놓고 몇 차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헬라(HeLa)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특히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일대기라는 점이 [Book소리]의 핵심 이슈와 부합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헬라세포의 원주인 헨리에타 렉스와 그녀의 자궁경부에 생긴 종양으로부터 분리해낸 세포가 영원히 증식하도록 불멸의 존재로 만든 과학자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었어야 할 의학윤리 및 연구윤리 혹은 보상 등에 관한 내용은 최근 의학계의 첨예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에 같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는 1920년 8월 1일 태어난 헨리에타 렉스라는 이름의 한 흑인여성과 그녀의 종양세포로부터 유래한 헬라세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에 가족들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가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9일 헨리에타 렉스가 질출혈과 통증 때문에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병원의 산부인과 외래를 찾은 것을 계기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잘라낸 종양으로부터 종양세포를 분리해 실험실의 인공적 환경에서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는 불멸의 세포로 만들어낸 의사와 생명과학자들이 헬라세포를 두고 보인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전자의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헬라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종양을 제공한 환자, 즉 헨리에타 렉스의 신원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헨리에타가 남겨놓은 세포가 불멸의 존재가 되어 의학연구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헬라세포를 만들어낸 존스홉킨스를 비롯한 정부 어디에서도 가족들을 배려했다는 흔적은 없고, 오히려 이들을 이용하려는 세력들까지 등장하면서 시달림을 당하게 된 가족들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실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가 특히 그녀의 딸 데버러를 중심으로 한 헨리에타의 가족들의 입장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의학, 혹은 생명과학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사의 비중보다는 헬라세포를 추출해서 배양에 성공하게 된 과정에서 빠트리지 말았어야 할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헨리에타 렉스에게 종양세포를 배양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세포배양에 성공하게 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뒷날 헬라세포의 활성이 지나치게 왕성한 탓에 다른 배양세포들을 오염시키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게 됩니다. 이때도 역시 가족들에게 충분한 설명없이 넘어간 점 등을 ‘옛날에는 다 그랬어~’라고 정리하기에 찜찜한 무엇이 남는 느낌입니다.

저는 병리학과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하고, 병원의 병리진단업무 또는 법의부검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게 넘어오는 환자의 표본들로부터 검사에 필요한 부분을 얻어 진단을 정하고 학생교육 등의 재료 혹은 희귀한 질환 등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보관이 필요한 검체는 남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검체는 소각하여 처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별도로 환자의 동의를 얻은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도 검체가 이를 제공한 환자의 소유라고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분자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하게 되면서 환자로부터 얻은 검체를 조작하여 진단시약 혹은 연구재로를 만들어 상품화할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소유권의 소재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Book소리]에서는 한스 요나스 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를 읽으면서 바로 이 문제를 공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나스 교수님은 현대 기술이 윤리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그리고 형이상학적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헨리에타 렉스의 사례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조지 가이의 실험실에서 헬라세포배양에 성공하기 이전에는 배양하는 종양세포마다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처럼 실험의 최종결과는 예상할 수 없는 모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헨리에타의 종양세포를 배양해 불멸화하는 작업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밝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기술이 개발된 시점과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데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헬라세포가 불멸화된 다음, 조지 가이는 이를 이용해 의학연구를 하려는 연구자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이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951년 미국에서 소아마비가 창궐하면서 미국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이렇게 개발된 소아마비백신을 검정하기 위하여 헬라세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세포의 손상없이 배송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헬라세포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한 대단위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이 가능하게 된 것이 헬라세포가 생명공학연구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요나스교수가 제기한 현대기술이 인간중심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헬라세포와 관련해서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나스교수는 전통윤리학이 언제나 인간적 선을 장려하고, 타인의 권리 내지 타인에 대한 관심의 존중, 그들에게 일어나는 불의의 개선,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완화를 강조해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세포을 사용한 실험을 했던 시험실은 물론 헬라세포를 개발한 존스홉킨스를 비롯하여 소아마비의 예방을 최우선의 보건정책으로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어디에서도 헨리에타 렉스가 의학과 공공보건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기리는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헨리에타 렉스의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헬라세포의 진위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일은 연구윤리에 저촉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환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사실을 비밀로 하지 못한 연구진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지 가이가 헨리에타 렉스의 종양조직으로부터 배양해낸 헬라세포는 앞으로 암정복을 위한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 세포가 누구로부터 얻은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기 위한 언론의 열띤 취재경쟁이 헬렌 레인, 헬렌 라슨 등의 이름으로 추측되어왔던 헬라세포의 제공자가 헬리에타 렉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가족들이 언론과 개인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을 보면 환자의 비밀유지규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시 [Book소리]에서 첫 번째로 다루었던 반덕진 교수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적혀있는 것처럼,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또는 진료 과정 외에 그들의 삶에 관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비밀로 지키고 누설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환자 보호의무에 관한 조항을 위반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반덕진교수님께서도 환자의 비밀을 어느 선까지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즉 환자의 비밀이 보호되는 것보다 공개되는 것이 사회적 편익이 큰 경우 비밀준수규정의 적용에서 예외로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렉스의 경우 헬라세포와의 관계는 결국 그녀의 병력이 공개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그녀의 병력이 사회적 편익을 침해하는 바가 없다 할 것이므로 그녀의 실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분명 의학윤리규정을 위반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검체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 둘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털세포백혈병에 걸린 존 무어로부터 채취한 검체를 가지고 만든 Mo세포주와 단백질에 대한 특허를 획득한 UCLA의 암학자 데이비드 골드가 이를 생명공학회사에 매도하기로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무어가 골드를 상대로 자신을 기만하고 동의 없이 자신의 몸을 연구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여 자신의 조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지만, 대법원은 무어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조직이 환자의 신체를 떠나는 순간 환자의 소유권도 사라지는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무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환자도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혈우병을 앓고 있던 테드 슬래빈이란 환자는 잦은 수혈로 B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치의는 이 사실을 슬래빈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슬래빈은 B형간염백신을 개발하려는 제약사에 자신의 혈청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슬래빈은 B형간염을 퇴치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학자 바루크 블럼버그를 찾아가 자신의 혈액과 조직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여 결국은 B형간염백신의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쾌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같이 생각해볼 점은 요나스 교수님이 제기한 환자의 기본적 특권에 관한 점입니다. 그는 치료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의사는 오직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에 국한된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들에게 사회 혹은 의학의 대리인이 될 것을 주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나 동일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다른 환자 혹은 고통받게 될 미래의 환자를 위한 대리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는 현재 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단 전염병 환자의 경우는 예외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헨리에타 렉스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마무리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금전적 보상을 원한 가족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렉스가 자궁암치료를 받는 동안 태중(胎中)에 있던 딸, 데버러 렉스는 바로 어머니와 언니의 삶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헬라세포가 의학연구에 기여한 바를 고려하여 헨리에타 렉스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환자진료를 통해 얻게 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의학계가 얻는 부수적인 이익에 대해 윤리적 시각에서 논의가 가능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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