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현안브리핑>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의원·병원의 백내장, 항문질환, 탈장, 맹장, 편도 및 아데노이드, 제왕절개, 자궁 및 자궁부속기 등의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DRG) 강제적용 및 확대 시행을 추진 중에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비 상승의 가속화, 진료비 청구심사에 따른 업무과중, 의료인과 보험자간의 마찰, 의료서비스 제공의 왜곡현상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DRG를 강제시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의료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실시되어 온 DRG가 모든 과에 적용될 경우 의료의 질 저하에 따라 국민건강과 행복에 위해를 줄 가능성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의학발전을 저해하는 등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DRG 강제적용에 따른 문제점 분석을 통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DRG는 최상의 새로운 기술이나 약․치료재료의 사용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중증 질환이나 부작용 발생시 최선의 진료를 어렵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질저하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DRG는 진료의 종류나 양에 관계없이 정해진 진료비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증상이 심한 중증환자와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최선의 진료를 위해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추가적 공급과 치료기간 등을 제한하고, 신의료기술의 도입에 장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한 질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나 새로운 치료방법, 첨단 의료용구 적용, 신의료기술 기술개발에 대한 연구의욕을 상실시킴으로서 의료기술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둘째, 현행 DRG는 병원의 시설이나 장비 등 병원관리료(hospital-fee)에만 한정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의사의 행위부분까지 모두 포함함으로써 극히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DRG는 우리나라와 달리 기본적인 의료체계의 기반이 구축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미국에서조차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병원관리료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DRG 의사의 행위부분까지 포함하여 기형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와 같은 저수가 체계에서는 적정한 DRG 수가 책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DRG 분류체계는 환자의 상태와 중증도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진료 형태의 차이에 따른 수가를 적정하게 책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된 최신의 치료재료, 약제 등에 대한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결국 의사의 소신진료를 저해하게 될 것이다.

DRG라는 새로운 지불제도를 시행하려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원가분석 및 평가가 이루어진 후 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수가산정 원칙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대가치 점수를 이용하여 산정했으며, 현행 상대가치 점수가 저평가 되고 특히 고위험 기술비용, 즉 High risk fee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넷째,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각종 민원과 의료분쟁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DRG는 의료소비자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제한함에 따라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게 됨으로써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불신만을 가중시키게 된다.

다섯째, DRG는 정부가 진료비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행하는 것으로서  이는 총액계약제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큰 바, 이로 인해 대한민국 의료는 파탄에 이르게 될 개연성이 높다.

DRG 전면 확대는 2000년 의약분업제도 강제시행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으며, 전면 시행됐을 경우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의료공급자인 의료계와 수가수준, 환자분류체계, 수가조정기전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행위별수가제의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DRG 전면시행을 밀어붙인다면 정부는 의사들의 전폭적인 협조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의료계 단체와 DRG의 문제점에 대한 세밀한 검토 및 개선방안을 충분히 마련한 후 제도를 도입해야만 의료공급자와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게 인지상정이다.

DRG를 전면 실시할 경우 다시 이 제도를 환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DRG 전면실시 후 이를 채택한 과에 엄청난 왜곡현상으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환자의 피해로 귀결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의사비용과 병원 관리료가 분리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DRG 전면 시행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며 장기적 과제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포괄수가제(DRG) 전면 시행 추진을 철회하고 원가에 근거한 수가 수준을 산정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마련한 후 의료공급자인 의료계 단체와 함께 세부적인 검토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제도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를 해 주길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2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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