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의 가슴앓이>

보건소, 보건지소는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진료기관이다. 그래서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순수하게 운영할 수 있다. 도시에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많이 만들어지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에 보건지소를 많이 만들면 과연 좋은가?’라는 물음은 한 마디로 어리석은 질문이 될 수 있다. 당연히 공공의료 기관은 많아져야 하는 것이고, 부족한 보건지소를 늘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내면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들이 있기에 도발적으로(?) 화두를 던져본다.

국가별 공공의료 수준의 평가 기준

우리나라는 복지 수준이 발달한 나라들에 비해 공공의료가 약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아직 ‘공공의료’란 개념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통상적으로 보건의료에서는 민간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부분을 말한다. 공공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는 공공병상의 수와 공공의료기관 수를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공병상 수에서는 OECD 국가 중 제일 하위권이고, 공공보건기관(국공립의료원, 특수병원,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계속 연구되어 오다가 2005년 10월부터 2년 간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도시형 보건지소를 확대하고 있다. 농어촌에만 있는 보건지소를 도시에도 두겠다는 것이다. 그 계획에는 10퍼센트 수준인 공공의료시설을 30퍼센트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중요 내용으로 들어 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 추진 중에 있다.

도시형 보건지소 늘리면 무엇이 문제일까?

현재 체계로는 농어촌에 인구 10만 명당, 도시에 30만 ∼ 50만 명당 1개의 보건소를 두고 있다. 보건지소는 주로 농어촌 지역에 있는데, 보건소와 거리가 멀거나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분포되어 공중보건 의사들이 파견되어 진료를 하고 있다. 도시형 보건지소란 농어촌이 아닌 도시 지역에 보건지소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수십만 명당 하나씩인 보건소로는 도시 지역의 공공의료를 완수할 수 없다는 책임감과 대외적으로는 공공의료기관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강박증의 발로인 것 같다.

관련 자료들을 보면 도시형 보건지소는 지방의 보건지소와 달리 일반 시나 광역시의 구 단위에 인구 5만 명당 1개씩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역할도 만성질환 관리, 방문보건사업, 재활보건사업, 노인보건사업 등 지역사회에서 절실한 보건사업을 할 계획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 생겼는데 문제는 도시형 보건지소가 동네 병원을 무력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과 함께 지금 보건소 운영의 행태를 봐서는 진행되는 도시형 보건지소도 비슷할 것이라는 운영상의 문제점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보건지소가 생겨서 진료를 하면 동네 병원들은 경쟁에서 밀릴 것이고, 그러면 이들 병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지금도 보건소에서는 지역 보건사업을 하고 있지만 일반 진료도 하고 있다. 만성질환자들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질환이나, 연령대,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두루 환자들을 보고 있다. 보건소의 수익도 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업적으로도 평가되므로 환자들을 많이 보게 한다는 말도 있다. 이른바 ‘업적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만일 도시 곳곳에 이런 보건지소가 만들어진다면 이용자들도 돈이 안 드는 보건지소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자칫 의료 이용 남발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보건지소의 원래 취지인 지역 보건사업과 의료 소외계층에 대한 보건사업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과 동네 병원 연계한 지역 보건사업 제안

내 생각은 이렇다. 도시형 보건지소를 만드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이를 통한 보건사업 내용이 명확해야 하고, 처음 가졌던 취지대로 이행되어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 사업, 재활, 노인보건사업, 방문보건사업 등 정말 지역에서 필요로 하지만 자본주의적 의료 행태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부분을 담당해 주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동네 병원과 다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위의 내용만 수행한다고 해도 인력과 재원이 모자랄 텐데,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일반 진료에까지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고 정말 업적 쌓기를 위한 의료라면 지금 당장 도시형 보건지소 확장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공공부분의 의료기관들은 동네 병원과 밀접하게 지역보건 사업을 연계해 사업을 벌이면 굳이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아주 많다. 도시형 보건지소도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동네 병원을 활용하면서 만성질환 등록 및 관리를 하고, 지역 내 소외 계층에 대한 진료나 방문 사업도 동네 병원을 이용하면 얼마나 좋은가? 임산부, 영유아 관리도 같이 담당하면 좋지 않은가?

실제로 보건소와 동네 병원이 연계되어 진행되는 사업들이 꽤 있다. 게다가 내가 만나는 의사들 일부도 지역에서 봉사 사업을 개인적으로 하기도 하고, 하고자 원하는 분들도 많다. 물론 그 분들은 우리가 말하는 ‘진보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만일 도시형 보건지소를 정말 잘 운영하려면 지역주민, 지역보건 관계자, 동네 병원, 공무원 등으로 이루어진 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 전반에 관한 담당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기에 주치의 제도에 대한 시범사업을 고민해 볼 수도 있겠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공공병상 수나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현재 있는 병의원들, 특히 동네병원과 연계해서 지역 보건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민간 자원이지만 동네 병원과 같이 있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서, 인력이나 재원이 덜 들이면서 지역 보건사업이 잘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안을 둬 사업을 연구해 보기를 정부에 제안해 본다.

고병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도 '탑동 365일 의원'을 공동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보건복지분야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 칼럼은 필자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홈페이지(http://www.saesayon.org)에 게재한 글을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재 게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