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문(가톨릭의대 정신과 교수, 한국의료윤리학회장)

의료계는 물론 제약업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학회가 있다. 양쪽 모두에게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문사회학 관련 집단에서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의사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15년간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오며 조금씩 성장해 온 학회가 있다. 바로 한국의료윤리학회다. 의료윤리학회는 오는 11일~12일 이틀간 '의료에 있어서의 정의(正義)'를 주제로 정기 학술대회를 연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배분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의료윤리'조차 낯선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의료정의'를 논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9일 가톨릭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의료윤리학회 최보문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의료윤리학회가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주로 어떤 일을 해 왔나.

 

"의료윤리학회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학회다. 처음에 의학교육학회 안에서 의료윤리교육연구회라는 조그만 스터디그룹으로 시작했다. 당시 의료윤리라는 주제는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할 때였다. 덕분에 진지하게 의료윤리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하게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 학회는 외딴 섬 같은 존재였다.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다들 우리를 꺼려했다. 그렇다고 인문사회학자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의사니까 그래도 기득권층이니까 하면서 외면당했다. 하지만 그동안 의료윤리에 대한 현실적이 이야기들, 윤리적이면서 효율적인 의료자원의 분배에 관한 연구와 활동들을 해 왔다."

 

- '무상의료'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무상의료에 대한 의료윤리학회의 입장은 어떤가.

 

"지난 총선 때에도 어쩌면 무상의료가 총선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무상의료’라는 말은 상당히 기분 나쁜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공기도 깨끗하게 잘 지킬 때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하물며 많은 재원과 인력이 들어가는 의료분야에 무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문제다. 사람들은 의사가 “의료에 무상이 어디있냐”고 말하면 “의사들 배불리려고 하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서로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의사들이 없는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무상의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s, NHS)다. 그러나 NHS는 사실상 무상의료가 아닌 공동구매다. 국가에서 걷은 세금을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서비스 형태로 분배하기 위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사회와 계속 토론·수정·개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눠 쓰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무상의료는 있을 수도 없고 만일 무상의료를 하게 된다면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 올해 학술대회 주제가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을 위한 윤리’다.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은 효율적이면서 윤리적인 의료자원의 사용을 말한다. NHS의 취지처럼 세금을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한 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얻고 많은 책이 팔렸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공정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만일 같은 조건의 사람에게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의료정의라고 한다면 각각의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의료자원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의료는 의료자원을 어떻게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대병원이 심평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다. 선천성 대사이상이 있던 어린 환자에게 약값만 연간 5억 원이 드는데 환자 부담금은 1000만 원 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환자가 10년을 산다고 하면 약값만 50억 원이다. 약값 외에 치료비 등을 합하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 한 사람에게 100억 원을 쓰는 것과 달동네 같은데 살면서 당뇨병 치료제 살 돈이 없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비교 해 보면 의료자원의 배분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학술대회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둘 다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는 '세대윤리'(Generation Ethics)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 최근 한 자료에 따르면 임종직전 3개월간 쓴 의료비가 사망 전 2년간 쓴 의료비의 3분의 2나 된다. 그만큼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세금 즉 의료보험 지출이 노인들에게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적을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가 보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고령화 사회의 파이 나누기를 어떻게 해야 공정한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장비의 분배 문제다. 같은 수술인데 로봇수술은 몇 천 만원씩 한다. 같은 수술이라도 개복수술을 받으면 싸다. 고가의 첨단 의료장비, 의료수술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해야 한다. 의료장비 분배 문제가 의료윤리와 역사를 같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60년대 미국에서 인공혈액투석 장비가 처음 선보였을 때 수많은 환자들 중 어떤 환자를 선택해 치료를 받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오늘날 로봇치료나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도 그렇다."

 

- 논의가 꼭 필요한 주제지만 어려운 주제다. 그만큼 부담도 클 것 같다.

 

"그렇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그만큼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이 강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하버드와 옥스퍼드의 저명한 교수들을 초청했다. 학회가 돈이 없어서 강의료는 이야기도 안하고 비행기 표도 이코노미석 제공하기로 하고 모셔오는 것이다. 초청할 때 구구절절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어렵게 날짜를 조정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토니 호프 박사는 영국에 의료윤리를 정착시킨 사람이다. 그는 젊었을 때 의료윤리 토론그룹부터 시작했다. 그걸 연결하고 확장해서 NHS 내에 임상윤리연구소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영국 내에서는 의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임상윤리연구소에 문의한다. 호프 박사는 정신과 의사다보니 안락사, 치매환자 등 중요하지만 외면받기 쉬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왔다. 하버드대학교의 대니얼 위클러 박사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인구 전체가 공정하게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대가다. 학회에서 깊이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의료윤리교실이라는 것도 올해 처음 시작한다고 들었다.

 

"의료윤리에 대해 정말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은 수련의들을 훈련시키고 교육해야 하는 대학교 교수들과 매일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개원의들이다. 실제로 환자를 보는 환경에 정착한 사람들이 의료윤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을 의료윤리를 생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수련의들도 아직은 지시를 받고 배우는 단계다. 그래서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의료윤리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의료윤리를 확산시킬 것인지 고민하다 만들게 된 것이 의료윤리교실이다.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토론하고 의료윤리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의료윤리교실 초대 교장은 고윤석 전임회장이 맡았다. 의료윤리교실은 학술대회와 함께 일 년에 세 번 정도 할 계획이다. 의료윤리교실이 활성화 되면 더 많이 할 계획도 있다."

 

- 미국은 오는 2015년부터 의대생 선발시험에 인문사회학적 평가요소를 추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윤리의식이나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기준을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의료윤리에 관한 문제를 국가고시에 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의사가 다뤄야 할 환자는 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의료 환경, 의사와 환자의 가치관과 삶의 배경 등이 모두 다르다. 그만큼 평가요소를 다양하게 고려해야한다. 국가고시에 의료윤리 문제를 반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진료가이드라인(Good Medical Practice, GMP)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잘 만들어진 GMP는 영국의 형태인데 환자에게 존댓말을 쓸 것, 의사 자신의 가족에게는 처방하지 말 것 등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이 역시 굉장히 방대하고 많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한국 의료계 맞는 GMP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 해 GMP를 만드는 과정인 DMP(Developement Map)를 만들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 토니 호프 박사의 부인인 샐리 호프도 참석해 영국의 GMP 개발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들려줄 예정이다."

 

- 의료윤리와 관련해 의료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의료계는 특히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윤리가 의사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욕먹지 않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의료윤리를 바로 세우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의사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것은 안 된다. 예컨대 ‘의사는 사회정의를 고려해 의료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사회정의’다. 사회정의는 뭐고 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자원은 어디까지라는 말인가. 아직까지 우리나라 의료윤리는 구체적인 부분이 없다. 의료윤리를 이야기 하려면 실제 의료인이 참여하고 많은 논의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의료진의 입장 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의료윤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윤리학회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 오는 11일~12일 이틀간 개최되는 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의 상세한 프로그램은 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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