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모(삼성화재 R&D센터 연구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간 보험사에 근무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보험사가 의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보험상품을 연구하고 기획하는 일에 전문성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는 지난해부터 상품 R&D센터를 회사 내 별도 조직으로 신설·운영해 오고 있다. 이 센터는 보험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독일인 보건학 박사를 비롯해 회계사, 경영학자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한국인 의사인 김승모 씨도 작년 여름부터 이 센터에 합류했다. 김승모 연구원은 의대 졸업 후 수련을 마치고, 2년 전 삼성화재에 입사했다. 진료를 과감히 포기하고 민영보험사에 도전장을 낸 그를 만났다.


-의대를 조금 늦게 입학한 것으로 들었다. 뒤늦게 진로를 바꾼 이유는 뭔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짧은 직장생활 후, 박사후 연구과정을 하게 된 아내를 따라 무턱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태어난 첫아들이 출생 일주일만에 ‘핵황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으로 미국 의료를 대하는 우리로서는 모든 게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황달’의 정식 영어명칭도 몰랐던 우리 부부를 차분하게 응대하고 침착하게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가능성에 대해 설명해 주던 의료진들의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때 의료진이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었던 행동이 4년 후 의학의 길을 택하게된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의대 졸업 후 수련까지 마치고 민영보험사를 택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수련을 마치고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면서 평소 관심분야였던 의료정책을 공부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의 관계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환경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 중에서도 지불자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의문이 쌓여갔다. 사실 의료인으로서 가지게 된 큰 의문 중의 하나가 단순히 학교에서 배웠던 가이드라인과 원칙에 따라 환자에게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지불자의 영향력을 배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지불자 외에 사회보험의 보충적 성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민영건강보험 분야가 더 관심이 갔다. 또한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동시에 그 역할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게 민영의료보험이라고 생각했다." -삼성화재 R&D센터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R&D센터는 회사의 장기 비전 하에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컨셉의, 틀을 바꿀만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가시화하는 게 미션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보충적 민영의료보험의 성격상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이해하고 향후 전개방향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함께 하고 있다." -민영보험사에서 보건의료정책연구가 중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민영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의 보충적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의 변화는 본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때문에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고 향후 전개방향을 예측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2010년 하반기에 이슈가 됐던 ‘간병서비스의 제도화’가 단적인 예다. 당시 환자(가족)와 간병인과의 사적인 계약에 의해 유지되었던 간병서비스를 제도권안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급여 혹은 비급여화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실손의료보험을 설계할 당시 간병비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항목이어서 민영건강보험사들의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상손실이 보수적인 추정으로도 수조원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은 민영의료보험의 기본적인 업의 영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민영보험이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배우고 적용시킬 논리는.

"우리는 건강보험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제안에 주목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건강보험 하나로’라고 보고 있다. 민간보험사 입장에서도 그들 주장의 근거와 논리를 분석해 받아들일만한 것과 비판해야 할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민영건강보험 가입과 의료이용량 증가와의 연관성에 대한 논란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체감의료비 감소가 의료이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과잉진료 및 과다입원이 민영건강보험의 상품설계와도 관련이 있다면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의료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와 연구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민영보험사에 입사하기 전후로 건강보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인식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건강보험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임상의로서는 단순히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의 폭과 수준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건강보험의 태동부터 변화의 과정, 그 변화를 오게 한 배경 등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건강보험은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운영돼야 할 중요한 사회서비스다.  이를 근간으로 여러 상품과 서비스가 도출돼야 하고 이들의 적정한 운영을 위해 국가의 제도적 관리가 모색돼야 한다."

-민영보험이 건강보험과 상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각자 역할에 충실할 때 (상생이) 가능할 것 같다. 건강보험은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보장제도의 기본축으로서 국민의 건강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공적지불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다만 국가의 재원마련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부족할 수 있는 보장성의 일부를 민영건강보험이 담당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보편적인 서비스 이상의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민영보험 사업자의 상품과 서비스는 늘어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의 정책과도 부합하는 부분이기도 한 신의료기술과 관련된 상품 및 서비스이다. 국가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있고 이를 민영건강보험이 담당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영보험사업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관련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과 삼성헬스케어그룹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 네트워크가 의료민영화의 수순이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나.

"병원에서 의료인으로 근무할 때도 그런 소문을 접한 적이 있다. 물론 보험사에 들어와서도 주변의 의료인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의료민영화와 삼성과의 관련성에 대해 사실을 확인해줄 만큼 고급정보에 접근할 만한 권한이 내게는 없다. 다만 의료민영화에 대한 가능성과 의구심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일개 기업집단과의 연관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보건의료정책방향과 관련된 큰 틀에서 접근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 연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작은 힘이지만, 의료인으로서 민영의료보험사가 건강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 그 기본이 되어야 할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또한 국민의료비에서 지불자로서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건전한 비판이 이뤄질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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