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문제 등 선진국 의료진 채용 힘들 듯…"동남아·중국 의사로 채워질 수도"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30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절차 및 이들 의료기관과의 협력체계 등을 담은 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외국의료기관은 반드시 진료과목당 외국면허를 소지한 의사·치과의사를 1명 이상 고용하고, 병원운영 관련 의사결정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둬야 한다.

 

단 외국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가 10명 미만인 경우 해당 면허소지자를 1명 이상 고용해야 한다.

 

복지부의 규칙 제정안이 입법 예고된 가운데 외국영리병원의 설립 요건에 맞는 의료진이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의 의료진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규칙 제정안에 단순히 ‘외국 면허 소지자’로 규정 돼 있어 우리나라 의료면허만 아니면 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자유구역내 설립되는 외국영리병원에 미국 등의 의료진을 채용할 경우 엄청난 인건비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소재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미국 의사들의 경우 국내 의사 연봉의 10배에 가까운 비용을 받는다”며 “실력 있는 의사들을 데려오는데 드는 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인들의 시각에는 한국은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인 불안한 나라, 문화적 수준이 한참 뒤떨어진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인정받고 있는 의사들이 현재 받고 있는 급여 조건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조건에 정치적 상황 등이 불안한 한국까지 와서 근무하겠느냐는 것이다.

 

또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만족할만한 급여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관련 규정에도 ‘외국 면허 소지자’로 애매하게 규정 돼 있어 대부분 동남아를 비롯한 의료수준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의 의사들이 영리병원의 외국인 의사로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도에 들어서는 국제병원의 규모가 600병상 수준에 불과하고 외국인 환자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엄청난 인건비를 지불하고 미국 등 선진국의 의료진을 채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모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도 “기본적으로 미국과 한국은 급여 차이가 10배 가까이 난다”며 “말 그대로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이익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적은 병상 수에 엄청난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이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안으로 동남아, 중국 등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의사들을 고용해 구색만 갖추고 실제 진료나 수술은 한국인 의사들이 담당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 된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송 정책위원장도 이같은 주장에 공감했다. 

 

이 위원장은 “영리병원은 막대한 금액이 투자되는 병원인데, 인건비 등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면 동남아 등 후진국 의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영리병원은 시작과 동시에 망한다”고 말했다.

 

수가, 인건비 등에서 우리나라와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했을 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환자가 영리병원을 찾을 일도, 의료 관광객이 국내 영리병원을 찾을 일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폭스TV에서 방영되는 인기 메디컬 드라마 '닥터 하우스'

 

반드시 미국 백인 의사여야만 한다?

 

수준미달의 의료진이 고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지식경제부 지식서비스투자팀 이종석 팀장은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근무하는 경력 10년차 의사의 월급은 20~3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3억 원 수준"이라며 "그러나 단순히 급여나 수가 차이 때문에 수준이 낮은 의료진을 고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복지부 입법 예고안 중 의사결정기구 운영에 관한 내용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운영협약을 맺은 외국의 법률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의료기관에 소속된 외국의 의사로 구성해야 한다.

 

의사결정기구의 장은 외국의료기관의 장이 되고 위원으로 외국의료기관에 개설되는 진료과목의 임상책임자를 포함토록 돼 있다.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운영협약을 맺은 의료기관 소속 의사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수준 낮은 의료진이 근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팀장은 “국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진들 중 외국 생활을 경험 해 보고 싶어 하는 의사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 돼 의료진 고용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자유구역 내 설립되는 영리병원이 미국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의사들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전했다.

 

국내 의료관광을 오는 일본인들도 많고, 러시아나 중국 등에서 의료관광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의료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정부가 영리병원을 운영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국적의 의사를 얼마나 고용할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의료진 고용 형태는 해당 병원에서 어떤 경영전략을 수립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기획이사는 "외국면허 소지자를 10% 이상 고용하되 의사결정기구의 50%를 해당 병원 의료진으로 구성하게 한 만큼 수준미달의 의료진이 난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규정의 맹점을 이용해 외국의사면허를 가진 국내 의료진을 채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 기획이사는 “(외국면허에 대한)규정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국면허가 있는 의료진들이 영리병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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