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자살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편 / 한국학술정보 펴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지난 10년 동안 OECD국가 가운데 1,2위를 지키고 있어 “자살공화국”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살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살(自殺)은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와 'cædo(죽이다)'의 두 낱말을 합성하여 영어 suicide가 나왔다고 합니다.

지난 4월 12일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12춘계학술대회 개막 심포지엄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자살의 생물학적 이해와 치료적 접근”이었습니다. 우리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살에 대하여 의료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이라 하겠습니다. 4개의 연제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포항공대 박상기교수님이 발표하신 “자살의 동물행동학적 모델”이었습니다. “동물도 자살을 하는가?”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는 발표였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2살 난 페니키아 품종의 개가 주인이 죽자 보름이 넘도록 음식을 거부한 끝에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비단털쥐과에 속하는 소형 설치류인 레밍쥐는 3~4년에 한번씩 무리의 개체수가 갑자기 많아지는 폭발현상과 이주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히 노르웨이레밍쥐(Lemmus lemmus)의 이동은 가장 극적이어서 많은 쥐들이 바다에 빠져서 죽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레밍쥐는 물에 들어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동경로에서 나타나는 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은 없다고 하기 때문에 이 현상을 적정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한 집단자살행위라는 해석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동물에서 자살모델을 구현할 수 있겠다고 착안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의 질병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모델동물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현대의학의 극적인 발전에 기여한 요인의 하나일 것입니다. 모델동물을 통하여 질병의 발병기전을 추구하고 개발된 치료방법의 효능을 비교검증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 자살이란 독특한 행동양식을 동물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를 바뀌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고려대학교 이헌정교수님이 발표하신 ‘자살의 유전학적 연구방법론’, 김용구교수님의 ‘우울증에서의 자살의 생물학적 표지자’ 그리고 가천의과대학 이유진교수님의 ‘자살시도자에 대한 다양한 개입방법과 효과’ 등의 연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자살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처럼 많은 임상연구와 치료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신문지상을 통하여 교육현장에서 왕따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 고통을 피하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등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 이번 주에는 자살에 관한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버리는가’라는 부제를 단 <현대 사회와 자살>이라는 책입니다. 주제가 무겁고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두고 있음인지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가 주관하여 자살문제를 연구하고 계신 여러 분들이 분야별로 나누어 쓴 글을 모아 묶은 책입니다. 모두 여덟 분이 심리, 철학, 교육, 의학, 연예, 윤리, 사회 등의 시각으로 자살을 논하고 있어 자살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식을 개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분야별로 심도있는 논의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왜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버리는가’라는 부제는 해석하기에 따라 유독 한국 사람만 자살을 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겠고,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살에서는 보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에서만 독특한 원인이 있는 것이라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후자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만….

‘한국사회의 자살 ;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이해와 대처’라는 제목의 글은 자살이라는 행동을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정리한 것인데 자살성(suicidality)의 개념과 원인, 자살자의 마음, 자살의 예방 등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의학과 텍스트를 지나치게 축약해놓고 있지 않나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자살위험이 높은 정신질환을 범위를 좁혀서 자살행동을 유발하는 징후와 자살시도를 막기 위한 적극적 개입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심포지엄에서 이유진 교수님께서 소개하신 자살시도자에 대한 약물치료와 심리적 지지요법 등의 효과가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자살자의 마음이라는 소제목으로 된 짧은 글을 읽으면서 정말 자살자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자살에 성공한 사람이 남긴 글을 통해서 심리상태를 유추해볼 수는 있겠지만,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당시의 심리상태를 들어볼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나 하는 말도 안되는 트집을 남깁니다.

흔히 유명인의 자살에 따르는 베르테르효과를 이야기합니다. 보름전 경남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에서 70대의 할머니가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는 단신이 전해졌습니다. 부엉이바위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던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의 죽음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썼던 글은 노전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을 고려해서 바로 발표하지 못했습니다만,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대통령의 자살도 그렇지만, 그리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되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소식에 대한 언론보도성향은 꼭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무명 연예인의 자살소식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면 구석에 단신으로 처리되고 맙니다만,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혹은 스포트라이트라도 받고 있는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연예프로그램은 물론 정규뉴스프로그램까지 나서도 주요뉴스로 다루고 심지어는 생방송에 특집프로그램까지 제작하고 장례식을 중계방송까지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우리사회가 큰 문제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옳은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은 분들도 자신의 죽음이 화제에 오르는 것을 과연 즐길 수 있을까요?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스펙터클로서의 연예인의 죽음“제목의 글에서 이들의 죽음이 던지는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타는 일종의 영웅으로서의 대중적 토템이 라는 팬덤문화가 형성되고 있는데, 대중이 바라는 역할을 해야 할 스타가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중토템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방기한 것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상징적 폭력으로 분출하는 현상이라는 해석이 저로서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연예인의 죽음을 전하는 언론의 행태를 알튀세와 소쉬르 등 구조주의 철학의 개념으로 접근한 해석 역시 구조주의철학에 대한 저의 공부가 부족한 탓에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아쉬웠습니다.

오래 전 작고하신 연극배우 추송웅씨가 제작, 기획, 장치, 연출 연기까지 1인5역하여 흥행돌풍을 불렀던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기억되는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쾌락원리의 저편>을 중심으로 우울증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하신 김봉규교수의 “빨간 피터의 고뇌: 우울증에 대한 철학적 단상>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교수님은 우울증을 ‘명확히 하나의 의학적 질병’으로 규정하여 ‘그 병 자체에 대한 진단 및 치료의 임상적 접근이 의사의 몫이지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94쪽), 철학자의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우리의 전제는 그것을 질환이나 문제로 보는 부정적 시각’을 코페르니쿠스식으로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철학이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은 이제 겨우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교수님께서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을 인용하여 시작하고 있는 결론의 모두에 적은 “인간의 삶이 진정 고(아마도 ‘苦’일 듯합니다만)라면 사실 우울증의 치료는 실제 우울증의 치료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울증은 치료될 수 없고 억제될 뿐이다.”는 전제는 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전제인가 싶고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학과 사촌격이라 할 신학과 윤리학적 시각으로 자살에 대하여 논한 글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살론부터 시작하여 자살에 관한 사유의 발자취를 쫓고 있어 그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고 있으나 현대적인 해석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만, 역시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순성 교수님의 ‘자살예방책: 그 한계와 대안’과 강이영 교수님의 ‘자살위기의 이해와 대처’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사회의 안녕을 해칠 수 있는 위기상황에까지 이른 자살문제에 대한 구체적 접근방식을 논하고 있습니다. 전편을 통하여 정신의학분야의 전문가의 참여가 없어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만, 일차의료현장을 중심으로 자살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의료계에 주문하고 있는 최근 사회적 여건을 감안해서 정신의학과를 중심으로 하여 자살의 병리현상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마련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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