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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 어떤 형태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2.04.2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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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아마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는 전 과정이 어쩌면 폭력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폭력은 신체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언어적, 정신적 폭력도 포함된다. 사실 어떤 폭력이든 이 세 가지를, 혹은 최소한 두 가지 폭력을 동반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떤 폭력이든 그것을 행사하는 쪽에게도 명분은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에도 늘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때론 정의를 위해서, 때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또 때로는 사회적 대의명분을 위해서. 그렇게 폭력을 가하는 쪽은 늘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폭력은 명분을 약화시키고 부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대의명분도 폭력을 수단으로 할 때 그것은 이미 정당성을 잃게 된다.

최근 의사사회에 폭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바로 언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다.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에 선출된 노환규 당선자에 대한 중징계가 시발점이 됐다. 그 과정은 이렇다. 지난달 25일 실시된 제37대 의협 회장 선거에서 차기 회장으로 노환규 후보가 선출됐다. 그런데 이틀 뒤인 같은 달 27일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에서 노 당선자에게 '회원 권리정지 2년'이란 중징계 결정을 통보했다. 징계의 이유는 노환규 당선자가  앞서 열렸던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현 의협 회장을 향해 날계란과 멸치액젓을 투척하는 등 폭력사태를 자행한 것 때문이다. 중징계가 그대로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많은 의사와 의사단체가 의협 중앙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을 강력히 비난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선거를 통해 보여준 의사들의 민의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분노했다. 그 분노는 중징계 결정을 내린 의협 중앙윤리위 위원들을 향했다. 특히 박호진 중앙윤리위 위원장에게 분노가 집중됐다. 일부 의사들은 박 위원장에게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가했다. 전화로 항의하려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욕설과 협박성 내용이 뒤섞인 문자와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급기야 박 위원장이 일부 의료전문매체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가해진 일부 의사들의 폭언과 정신적 폭력 실상을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박 위원장 자신은 물론 그 가족을 향해서도 저주에 가까운 폭언이 이뤄졌다. 관련 기관에 집단으로 민원을 넣어 상대방을 압박하는 방법도 동원됐다고 한다. 언론매체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이 공개된 이후에도 욕설과 협박성 문자메시지 등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박 위원장에게 이런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쪽에게도 명분은 있다. 노 당선자에 대한 의협 중앙윤리위의 중징계가 의사들의 민의를 무시한 결정이고 의료계의 발전을 의사사회의 단결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윤리위는 계란투척 등의 행위가 의사를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노 당선자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현 의협 회장은 횡령과 배임으로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의사의 품위를 손상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윤리위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일각선 "특정 세력이 자신의 부패를 감추기 위해 당선인의 회원자격 박탈이라는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의협 파괴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도 들고 나왔다.

분명 타당한 지적도 있다. 중앙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이 부당하게 느껴질 만한 여지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박 위원장에게 가해진 욕설과 협박성 문자메시지와 음성메시지는 분명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다름없다. 의사들의 민의를 거스르는 결정에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항의하는 방식이 폭력이 된다면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일방적 폭력일 뿐이다. 노 당선자도 최근 사과문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현직 의협회장에게 계란투척이라는 물리적 폭력을 가한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취지가 옳다 해도 부적절한 행동에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고 규범"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나.

폭력으로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 폭력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폭력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은 더 심한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확대 재생산되어 강화될 뿐이다. 폭력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란 영화가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딱 세 번의 폭력을 행사한다. 가게에 침입한 강도가 종업원을 강간하려할 때, 갱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리고 형이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 어쩌면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폭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주인공이 행사하는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함께 식사하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을 비춰준다. 하지만 고스란히 남겨진 폭력의 기억 때문에 이 가족이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박 위원장은 자신에게 욕설과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의사들을 고소·고발했다. 이제 이 일의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 같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런 내용이 모두 알려졌다. 불행한 일이다. 어쩌면 이 일이 의사사회에 큰 생채기를 남기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또다른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혹여 누군가는 나중에 이런 말을 되뇔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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