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사례- 환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과잉진료 해야 하는 의사

소화가 안된다며 병원을 찾아 온 50대 아주머님에게 위, 대장 내시경 검사를 권유하였다. 특별히 심한 증상은 아니고 좀 오래된 만성 소화불량증으로 보이는데, 환자는 부득이 입원해서 검사하고 싶다고 한다. 이유인즉, 실손형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3일 이상 입원해야 입원비와 검사비를 탈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최근에 남편의 실직으로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말도 했다. 외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검사인데 환자의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입원시켜 치료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 이렇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심심치 않게 이런 요구를 해 오는 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 경우는 환자들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합니다. 의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종은 아니라고 보기에 정당한 입원사유가 없는 경우라고 판단이 섰다면 거절하는 것이 떳떳합니다. 물론 환자가 불쾌하지 않게 이유를 설명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납득하기 보다는 불쾌한 표정을 보이곤 합니다. 입원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을 찾는 환자라면 안 보아도 대세에 지장은 없을 정도는 되기 때문에 이런 용기를 내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막 개원해서 한 환자가 아쉬운 입장이라면 어떨지 자신은 없습니다. (정형외과 원장 D)

옳은 일은 아니지만 환자가 단골환자이고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당장은 환자도 좋고 병원입장에서도 입원비가 추가되니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보험회사에서만 문제 삼지 않는다면요...  (K의대 B씨)

■긴 고민, 간략한 조언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이론의 양대 산맥은 칸트주의와 공리주의(utilitarianism)입니다. 그 결과에 관계없이 어떤 행위 자체에 내제적인 선함과 악함이 존재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입니다. 반면, 공리주의자들은 그 행위가 산출하는 결과가 우주적인 행복(universal happiness)을 증가시키면 옳은 행위라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선의의 거짓말인데 공리주의는 이를 용인하는 반면, 칸트는 친한 친구가 강도를 만나 집으로 피신해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공리주의에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행위자 개인의 행복’에 방점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지 행위자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은 공리가 아니라 이기주의가 되지요. 

제시한 사례는 칸트의 입장에서 보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외래에서 충분한 검사를 입원해서 하는 행위는 환자의 상태를 거짓으로 심각하게 꾸미는 일이 되므로 ‘옳지 않은 거짓 행위’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공리주의자라면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입원 검사만 눈감아 준다면 환자는 보험금을 타니 좋고, 의사도 입원수입이 더 생기니까요.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입니다.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구요? 예 그래요. 보험회사가 걸리죠. 물론 대기업이 운영하는 보험회사라면 환자 한 분쯤 입원비 내준다고 해서 별 탈은 없을테니, 여전히 행복의 총량은 증가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찜찜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부 공리주의자들은 규칙 공리주의(rule utilitarianism)를 주장하였습니다. 어떤 행위가 개별적으로는 우주적 행복의 총량을 증가시킨다고 할 때, 그 행위를 규칙(rule)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의사들이 이런 환자를 입원시켜 보험금을 타도록 도와주는 진료를 규칙으로 삼아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결코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보험회사가 망하던지 아니면, 보험료가 엄청 올라 선량한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부담이 될테니까요.

이런 이유로 본 사례는 윤리학의 두 가지 입장, 즉 공리주의와 칸트주의 모두에서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당장은 환자가 다소 서운해 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고 전문직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는 길입니다.

■ 이달의 딜레마 사례 - 제약사의 임상시험 제안, 수락할까 말까 고민하는 의사 

지역사회 개원의인 P 원장에게 제약회사 직원이 찾아왔다. 고지혈증 치료제 중 후발 주자인 자사의 제품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것이다. 내용인즉, 향후 2개월간 30명의 고지혈증 환자에게 자사약을 처방하고 혈액검사 결과와 환자 인적 사항 등을 제공해 주면 건당 OO만원을 연구비로 주겠다고 한다. 또 묻지도 않았는데 직원이 실제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제작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며 회사 차원에서 자체 자료로 사용하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해당 약물은 기존에 P원장이 쓰던 고지혈증 치료제에 비하여 지질저하 효과가 다소 우수하지만 가격은 5% 정고 비싼 편이라고 하였다. 임상연구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 '딜레마 사례 1'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 drloved@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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