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사고 발생시 원인 규명 주체 불분명…피해구제기금 마련도 유명무실

지난 1998년 12월 A군(19세)는 감기 증세로 약국에서 감기약을 조제받아 복용하던 중 전신발적, 결막충혈, 인두 편두부궤양 등이 발생해 부산대병원을 찾았다. A군은 당시 자신을 진료했던 피부과 문태근 전문의로부터 '스티븐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 후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A군의 상태는 점점 악화돼 결국 이듬해인 1999년 3월 사망했다.이후 A군의 가족은 약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고등법원은 위자료 지급과 손해배상을 판결했다.그러나 대법원은 스티븐존슨 증후군을 사전에 검사할 방법이 없고 설명의무 위반이 환자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 중 위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했다. 약국에서 조제한 약을 복용하고 사망에 이르렀지만 약국이 사망 자체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판결이다. 결국 유가족은 설명위반에 따른 위자료만 인정받았을 뿐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은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유가족들은 어디서 A군의 사망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의약품에 의한 부작용 사고건수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48건에 불과했던 의약품 부작용 보고건수는 2005년 1,841건, 2007년 3,750건으로 증가하다 2009년에는 2만6,827건, 2010년에는 5만3,854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의약품 부작용 보고건수가 급증한데는 지역약물감시센터가 식약청에 보고체계를 의무화한 이유가 가장 크지만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등으로 인한 의약품 사용의 증가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신약개발과 도입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라 새로운 의약품에 의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의약품 부작용 사고 중에는 앞서 A군의 사례처럼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의약품 부작용 사고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기전 마련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도 약사법 개정 등을 통해 이를 준비해왔다.

실제로 지난 1991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품 제조업자나 그 수입자로 조직된 단체는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고 의약품의 안전성향상과 신약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기금을 설치·운영해야 하며 의약품 제조업자나 그 수입자는 필요한 비용을 부담토록 명시해 놓았다. 

지난 2007년에는 피해구제기금 설치·운영 대상이 의약품의 제조업자·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로 조직된 단체로 확대됐다.

그러나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는 개정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가 시행되지 못한 이유를 의약품 부작용 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약사법 상에 명시가 돼있는 만큼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가 시행이 됐어야 한다”며 “그러나 의료사고인지 약화사고인지 애매한 부분에 대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주체가 없는 것이 제대로 시행이 안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의약품 부작용 피해자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한강의 의료행정팀 이규철 팀장도 “법에서 명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재원이 문제”라며 “제약사 등이 기금을 갹출하게 돼 있지만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안내면 그만인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의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사업을 운영 중인 다른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기금을 위한 재원을 징수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각각 지난 1979년과 2000년부터 국가 차원의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를 마련한 후 제약사 및 제약품 수입업체 등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기금을 갹출받아 운영 중이다.

양 국가 모두 정해진 갹출률에 따라 제약사 등에 징수금을 부과하고 약해를 초래한 의약품에 대해 추가 부담을 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징수금 산출시 일본은 제약기업의 출하액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대만에서는 영업 순이익을 기준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에 실효성을 더하기 위해 정부가 기금마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의 가능한 재원 조달방안으로 ▲제약사의 부담금으로 조달 ▲일본처럼 제약회사의 부담금을 근간으로 하되 운영비 등을 국고지원으로 조달 ▲예방접종피해보상제도의 경우처럼 건강증진기금 또는 국고 조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현재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 과정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진행과정을 보면서 개선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17일 개원한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과 이달 중 구성이 예정돼 있는 의약품부작용 심의위원회 등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구제 절차 마련과 보상체계 확립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진행 중”이라며 “이제 시작하는 제도들에 대한 보완점을 찾고 관련된 다른 제도와의 연계점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올바른 제도 시행 방안을 찾아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진행과정 속에서 개선 부분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국내·외 의약품 정보의 체계적 관리·분석·평가하는 전문기관인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지난 17일 공식 출범했다.

의약품안전원은 지난해 6월 약사법 개정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의약품 사용 시 발생하는 부작용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평가·관리 ▲중대하고 알려지지 않은 안전정보 발굴 ▲약물-부작용 인과관계 규명을 위한 역학조사 ▲의약품적정사용(DUR) 정보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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