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 이승홍 편집장·김규연 집행부장

▲ 젋은 보건의료인들의 모임 '다리'는 건강이 키워드로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보건의료진보포럼에서 한 청년이 <다리>라는 소책자를 건넸다. “이거 우리가 만들어서 2천 5백 원에 파는 건데, 그냥 한번 읽어보세요.” 무심코 받은 소책자를 집에 와서 찬찬히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A4 절반 정도의 크기에 92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이지만, 무상의료, 한미FTA, 희망버스, 강정마을, 4대강,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후쿠시마, 고대의대 성추행, 중동혁명, 월가 점령운동,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노숙인 자활 등 2011년을 강타한 국내외 이슈들을 빼곡히 담고 있었다. 한 이슈 당 2~5쪽 분량이지만 내용은 무척 알찼다. 글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호수도 무려 14호이다.

'이게 뭐지?' 사실 이런 주제들로 짧고 읽히기 쉽게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게다가 14호 라니! 이걸 대체 누가 만든 거지하는 호기심이 동했다. 소책자 내용 중에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을 소개하는 글도 들어있었다.

“간호대/약대/의대/치대/한의대를 다니는 전국의 대학생과 젊은 의료인들이 모여, 인권, 건강권, 사회변혁을 위한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는 세 달에 한번 씩 소책자<다리>를 발간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를 갖으며, 책읽기, 영화감상, 전시회와 공연 관람 등의 활동을 통해 서로의 시각을 넓혀주고,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 한다”는 소개말과 함께 온라인 홈페이지 주소(http://club.cyworld.com/dary http://darytalks.tistory.com/)가 나와 있었다.

소책자 <다리>와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지난 20일 오후 종루구 이화동에 위치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이승홍 편집장과 김규연 집행부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만나고 보니, 나에게 <다리>소책자를 건넨 청년이 이승홍 편집장이었다.) 이승홍 편집장은 의대졸업 후 작년에 인턴을 마치고 지금은 일반의로 일을 하며 전공과를 모색 중이고, 김규연 집행부장은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황진미(이하 황) : ‘다리’라는 모임이 2008년 1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서 만들어진 것인가?

이승홍(이하 이): 2008년 초. 제 1회 보건의료진보포럼이 열렸다. 의미 있는 행사였고, 행사만 하고 끝내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그때 최규진 선생님(서울의대 의사학교실)등 몇 분이 포럼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세미나나 잡지 만드는 활동 같은 것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3월에 첫 세미나를 가졌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더러운 손의 의사들> 등의 비교적 쉬운 책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 창간호를 만들었는데, 창간호를 준비하는 중에 ‘촛불집회’가 터졌다. 촛불이 절정에 이르렀던 6월 10일 창간호가 나왔다.    황 : 하하.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김규연(이하 김):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연계해 홍보하기가 무척 좋았으니까. <다리> 500부를 찍었는데, 같은 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알음알음 팔면서 촛불집회에 같이 나가지 않겠냐고 제안하기가 좋았다. 촛불집회에 나온 친구들에게 세미나 등을 제안하기도 좋고. 촛불 정국이 아니었으면 홍보하는데 훨씬 많은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황 : ‘다리’의 회원이 얼마나 되나?

'다리' 이승홍 편집장(일반의)

이 : ‘다리’는 일부러 회원과 비회원의 구분을 엄격히 두지 않는다. 열린 공간이고, 한 달에 한번 하는 운영회의에도 아무나 올 수 있다. 온라인 클럽의 회원은 700명 쯤 된다. 2주에 한번 세미나를 하고, 각종 집회참석건 등으로 결국 매주 오프라인 모임이 있는 편이다. 집회나 세미나와 같은 모임에 보통 10~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오는 사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며 흘러간다. 왔던 사람을 기준으로 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단체문자를 발송하는데, 대상이 약 100명 정도 된다.

황 : 참여하는 사람들의 구성은 어떤가?김 : 의대와 간호대가 많고, 약대, 한의대, 치대는 적은 편인데, 전공 간 구분은 하지 않는다. 학교도 어떤 곳에서 많이 온다는 것도 없고. 지역은 수도권 중심이었지만, 지방에서도 오는 편이었다. 최근엔 대구, 익산에 다리 모임의 지역 거점이 생겼고 부산 대전 천안에도  시도 중이다.

이 : 정치적 스펙트럼도 다양한 편이다. 중도우파에서 좌파까지(웃음) 아직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확정하지 않고 참여하면서 조금씩 자기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싸이 클럽을 보고 관심이 생겨 모임에 나온 사람 중에 자신과 색깔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친구들은 잘 나오지 않게 되고, 진보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 친구들이 남게 되는 것 같다. ‘다리’는 특정정파의 정치조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만 이미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다리’에도 참여하는 개인들의 경우, 각자의 정치적 색깔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들의 활동이 특정 정파로 쏠리는 것을 지양한다. 그래도 ‘다리’가 공유하는 인식의 최소공배수는 추릴 수 있다. 건강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관점과 우리 사회에 어떤 구조적인 모순이 있는지 알고자 하고 또 거기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려는 점이다. 의료제도 문제에 있어서는 의료민영화에 반대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데, 꼭 의료문제에만 국한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보려고 한다. 사회의 모순들은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 : 느슨한 성격의 모임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다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 : ‘다리’는 공부 모임을 갖고,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여 집회에도 적극 참여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운동을 생산하는 단체는 아니다. 다리의 가장 중요한 존재의의는 ‘고립된 개인들 간의 인적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의대나 간호대, 인턴, 병원실습학생들의 삶이 어떤지 알지 않은가. 직능이해에 묶인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서 민주시민으로서 공동체를 사유하려는 개인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일깨우고, 정치적 주체로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리’ 라는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각 개인들 간의 다리이기도 하고, 개인들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여 다른 사회단체나 앞으로의 활동들을 찾아가게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황 :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 글쓰기 경험도 중요한데, <다리>에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글을 실은 사람의 수가 몇 명이나 되나?

이 : 한 호에 15~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14호까지 한번이라도 글을 실은 사람의 수는 약 50명 이상 된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지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또 글을 써봄으로써 자기 생각이 정리되고, 활자화 된 자기 글을 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다. 그래서 저변을 확대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리>는 매호 편집방향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14호는 2011년도 이슈가 총정리 된 정론지처럼 되어 버렸지만, 이달에 나오는 15호는 ‘젊은 보건의료인의 삶의 현장’이란 특집으로 각 계열의 친구들이 자신의 생활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녹인 글들을 모아 봤고, 그 밖에도 만화책이나 영화에 대한 평을 포함해 다양한 글이 실렸다. 지면도 고정된 포맷이 없다. <다리>가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이나 어떤 종류의 글만을 실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 : <다리>를 500부를 찍어서, 300부를 정기구독으로, 100부를 학교 친구들에게 팔고 100부가 남는다고 들었다. 이게 수지가 맞을까 싶다.

김 : 원가와 배송료 등을 전부 계산하면 인건비를 제하고 잡지로 인한 수입과 지출은 딱 제로이다.

황 : 웹진을 만들면 비용이 들지 않을 텐데, 그쪽으로는 생각을 안 해봤나?

김 : 내부적으로 찬반이 있다. 종이 잡지가 가진 접근성의 한계점은 블로그로 보완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과월호 기사를 올리는 블로그(티스토리)도 운영하고 있다. 종이 잡지는 가지고 다니면서 보기 때문에 가독성이 상당히 높다. 또 이미 종이 잡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확보한 정기구독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있고, 종이 잡지는 기록물로 남는다는 점도 있어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황 : <다리>를 읽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다리' 김규연 집행부장(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김 : 이제 겨우 '무플' 수준에서 '악플' 수준이 된 듯하다. (웃음) 학교에서 워낙 정치성향을 갖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의대생 클럽에 세미나 웹자보만 올려도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친구들에게 <다리>를 건네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진보적 정치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인 셈이다.

이 : 꼭 악플의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학보광고에 난 <다리>광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책자를 구입해서보고 <다리> 기사를 통해 채식주의를 처음 접해 정말로 채식주의자가 된 친구도 있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적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 보건의료계열 학교에서 그런 문제의식에 갈증이 있던 친구들이 <다리> 잡지에 공명하는 것 같다.

황 : 의대를 의전원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의대로 전환하고 있다. 본래 의전원을 도입할 때,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의학을 전공할 수 있다는 점을 굉장히 홍보했었는데, 분위기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 : 아무리 이종적인 학생들이 들어와도 교육과정과 수련과정이 동종적 인데, 뭐가 달라졌겠는가. 병원에서 원하는 것은 말 잘 듣는 의료노동자일 뿐이다. 거기에 의전원보다 의대가 더 맞았던 것이고.

김 : 의전원 커리큘럼에 인권의학이나 인문의학 등의 과목이 생색내기용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고, 커리큘럼은 거의 같으면서 수업 차시가 줄어서 압축되어 있다. 의대와 의전원 사이의 반목도 있고, 의전원 출신은 나이문제로 애매한 면도 있고….

황 : 의대와 의전원 등은 공부부담이 커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에 제약이 많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내나?

이 : 꼭 그렇지도 않다. 내가 만약 공대였다면 스펙 쌓느라 더 시간이 없었을 것 같다.  의대는 그래도 졸업만 하면 직업이 보장되는 것이니까, 학점 등을 조금 포기하면(?) 오히려 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

황 : ‘다리’ 모임에서 전공간의 구분은 별로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는데,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전공별로 진력할 수 있는 이슈가 다를 수 있지 않나. 간호대의 경우엔 노동권의 문제가 가장 크고, 치의대의 경우 네트워크 치과 같은 것이 정말 현안이지 않나.

이 : 지금도 해당 과에서 주력할 이슈들을 발굴하고, 다른 전공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직능 간 이해다툼으로 여겨졌던 일들도 이곳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토론이 이루어진다. 

황 : 앞으로의 계획은?이 : 일단은 조직의 안정화이다. 한일병원노조 같은 문제가 터졌을 때, ‘다리’가 적극 결합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가 되길 원한다.

김 : 지금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다리' 내부 사업은 여름 캠프이다. 제2회 건강권 캠프가 7월 27-29일 3일간 열린다. 작년에 제1회 캠프에 40명 정도가 왔다. 참가비가 4만원으로 저렴했는데, 그로인해 적자가 났다. 이를 개인후원으로 메웠는데, 올해는 단체후원을 고려해보고 있다. 또 ‘다리’ 지역 모임 활성화와 잡지를 위해 정기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황 : 이런 모임과 매체를 5년째 꾸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 후배님들, 힘내시라!

황진미는?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자격도 취득했다. 2002년에는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겨레21>, <시사저널>, <비타민> 등에 영화 관련 글을, <한겨레 훅>에 법정르뽀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라포르시안의 '황진미의 라뽀&르뽀'란 고정코너를 통해 보건의료계, 혹은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이슈를 진단하는 글을 쓰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