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체크 리스트 / 아툴 가완디 지음 /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펴냄

최근에 ‘현대의학의 비과학성’이라는 구체적인 제목의 글을 달고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고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마치 의사들이 쉬쉬하고 있는 비밀을 캐내어 의사들의 뻔뻔함을 고발하는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내용은 의학전문잡지에 발표되고 있는 각종 논문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주로 인용하면서 그 반대되는 주장을 담은 논문은 아예 있는지 없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어 저자가 의학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주장에 따라 현대의학을 거부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워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자료를 모으고 있어 저의 관심영역이 아니면 진위여부의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현대의학이 빠른 속도로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다 보니 진료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전문가라는 사람도 범할 수 있는 실수라는 영역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의료라는 영역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는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료행위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이 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어제는 모 상급병원에서 새로 부임한 스태프들을 위한 업무교육에서 제가 하고 있는 업무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교육시간에는 보통 제가 발표할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는 제 몫의 강의가 끝나면 떠나는 것이 일반입니다만, 이날은 모든 교육프로그램에 저도 참여해서 같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저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가 바로 “Critical Pathway(CP로 줄입니다)”였습니다.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어 그대로 적습니다.

CP는 건설/공학분야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공정으로 편성된 작업현장에서 최단 경로로 제품을 완성하는 경로를 택해 산업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입니다. 의료분야에 적용된 것은 1985년 미국 보스턴의 New England Medical Center에서 효율적인 의료를 제공하고 의료의 질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진료에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하고 있는 의료에서의 적정성평가 역시 산업현장에서 나온 개념이 의료분야에 적용하여 이제는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P는 환자진료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발하여 환자의 진료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든 진료절차의 틀입니다. 흔히는 규격화된 진료행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으나, 진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CP의 틀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별도의 대응을 하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체크! 체크리스트>는 바로 의료현장에서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한 체크리스트에 따라서 확인하고 또 확인함으로서 환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실수가 일어나는 원인은 의료분야에서 축적되어온 지식의 양이 방대해지고 내용 자체도 복잡해지고 있어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용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방식이 바로 체크리스트에 기반한 교차체크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일반외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정리한 글을 통하여 의료계와 일반인의 관심을 얻은 바 있습니다. 이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를 통하여 그의 솔직한 글솜씨에 반해온 탓인지는 몰라도 <체크! 체크리스트> 역시 공감되는 바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왜 전문가도 실수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1장을 요약하는 다음 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초전문가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일류 전문가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다. 복잡하고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며, ‘그래도 전문가인데 설마?’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자는 항공계, 건축업계에서 체크 리스트를 도입하여 성공한 체크리스트 운용사례 등을 인용하여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저항감마저 생기는 체크리스트라고 하는 사전예방체계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WHO의 요청에 따라서 수술 후 환자에서 발생하는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직접 개발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수준의 병원 8곳에서 시범운용한 결과를 2009년 1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바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핵심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수술 후 후유증을 줄였고, 수술에 참여하는 팀원들의 팀워크를 개선하였음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체크리스트는 환자의 안전확보에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예를 들면, “시기적절한 항생제 투여, 제대로 작동되는 맥박산소측정기 사용, 기도 내 튜브를 삽입할 때 필요한 공식적인 위험평가 완료, 환자의 신원과 수술절차의 구두확인,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환자를 위한 정맥주사 라인의 적절한 삽입, 마지막으로 수술이 끝났을 때 스펀지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들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196쪽)” 등입니다.

시범사업이 끝날 무렵 참여했던 직원들의 80%는 체크리스트가 사용하기 쉽고, 실시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으며, 치료의 안전성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팀 안에서 의사소통의 수준이 향상되어 팀워크가 좋아졌다고 했으며, 수술후 합병증이 36%, 수술후 환자사망률이 47% 감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만든 체크리스트 가운데 수술할 때 절개를 하기 1시간 이내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했는가를 목록에 넣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 가운데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 평가>라는 업무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선생님들은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항생제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이라는 개념은 피부를 절개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수술과정에서 상처를 감염시키는 병원균을 처리하기 위하여 수술부위를 절개하기 1시간 이내에(즉 항생제를 투여하고 1시간 이내에 절개를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여 수술시간동안 혈중 항생제농도가 최고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방적 항생제를 사용하면 수술이 끝난 다음 24시간 이내에 항생제 사용을 끊어도 수술부위에 감염이 일어나지 않더라는 연구결과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평가기법입니다. 하지만 감염위험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외과선생님들은 항생제에 의존하는 경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하는 환자에서 예방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고 수술 후에는 일찍 항생제 사용을 중단하는 외과선생님들이 빠르게 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의료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상가 도널드 버윅은 ‘의료행위란 자동차와 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자동차든 의료행위든 훌륭한 구성요소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의학계는 최고의 약, 최고의 장비, 최고의 전문가와 같은 최고의 구성 요소들을 갖추는데 집착하면서 이 요소들이 서로 잘 맞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249쪽)”고 따끔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일류 부품만 갖추었다고 해서 시스템이 훌륭해지는 것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릴 겁니다.”라고 한 버윅의 조언은 의료계에 꼭 맞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료팀을 도와주기 위하여 만들어져야 할 체크리스트가 오히려 의료팀을 방해하는 경직된 명령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효율적이면서도 간단한 절차가 되도록 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검토하여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는 제목을 둔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시겠습니까?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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