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원 '보건산업 기술수준 조사' 신뢰성에 의문…논문·특허 조사보고서 비공개

침구·경락 기술 등 한의학 관련 기술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래 보건의료 신성장 동력 기술에 선정된 것을 놓고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국내 ‘보건산업 기술수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흥원은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설문 및 회의를 통해 수준을 측정할 기술 149개를 선정했다고 한다. 이 기술들을 34개 중점기술로 묶을 수 있는데, 한국인 주요질병 극복기술 15개와 미래 보건의료 신성장 동력기술 19개 등 2가지 분야로 나뉘었다. 한의학 관련 기술은 미래 보건의료 신성장 동력기술 쪽에 포함된 것이다.   구체적인 한의학 관련 기술로는 ▲침구·경락 기술 ▲한방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 기술 ▲한의진단 표준 및 치료 기술 ▲한약제제 발굴 기술 ▲한약자원 표준화 기술 ▲한의진단기기 개발 기술이 포함됐다.     149개 기술의 수준은 궁극 기술(도달 가능한 절대 수준) 대비 수준과 최고 기술 보유국 대비 수준의 두 가지 방식으로 순위가 매겨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술은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과 수준을 비교한 반면 유독 한의학 관련 기술만 중국과 비교가 이뤄졌다.

이는 기술 수준 비교 결과에도 반영됐다. 최고 기술 보유국 대비 기술격차가 작은 상위 10대 기술에 한의 진단 표준 및 치료 기술(기술 격차 0년), 침구·경락 기술(0.1년), 한약제제 발굴 기술(1.5년) 등 한의학 관련 기술만 3개가 진입하게 된 것이다.

결국 기술 수준만 놓고 볼 때 한의학 관련 기술들이 R&D 투자 우선순위가 높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실제로 복지부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기술격차가 작은 기술은 한의학 기술, 의료정보(u-health) 기술, 불임‧난임 기술, 줄기세포 응용 기술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분야는 정부의 중점 지원이 이뤄질 경우 성공 가능성이 크고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분야”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산업 기술 수준 조사의 투명성과 객관성 측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진흥원은 이번 조사에 델파이 기법을 적용했는데, 1차 설문에서는 패널 1,830명 중 579명(31.6%)이 응답했고, 이들 중 2차 설문에 참여한 재응답자는 347명(59.9%)에 그쳤다. 

델파이 기법은 1차 설문을 토대도 피드백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1차 설문 응답자의 2차 설문 누락 시 결과 조사의 신뢰성이 대폭 감소할 수 있는데 재응답률이 60% 정도에 그쳤다. 

보건산업 기술 분야별로 패널이 1, 2차 설문 과정에 골고루 분포됐는지, 전문가의 선정 기준에 편향성은 없었는지도 짚어 봐야 한다.

▲ 비공개 자료인 보건산업 기술 수준 논문 특허 보고서.

또 1차 설문조사 시 패널들에게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해당 기술들의 논문․특허 조사(Web of Science DB 등 활용)가 이뤄졌는데 그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진흥원은 현재로서는 논문․특허 조사 보고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패널들에게 제공한 한의학 관련 기술의 SCI급 논문 수와 그 논문들의 임팩트 팩터를 조사한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진흥원 관계자는 “논문․특허 보고서는 보완 작업이 남아 있어 아직 공개할 수 없다”며 “자칫 객관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미래 유망 기술에 한의학 관련 기술이 포함된 것에 대해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기술 수준 조사 자문위원을 맡은 한 대학병원의 교수는 “한의학 기술이 포함된 것은 정책적 배려 아니겠냐”며 “한의학이 일정 부분 (R&D 예산)을 가져가려는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충북대병원 한정호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자신들의 전통의학을 신성장동력으로 정부가 발표한다면 비웃을 일”이라며 “(한의학은) 관광산업이면 모를까 의학과 산업의 영역에 넣을 수 없는 거다. 이는 정치과잉이자 정치가 과학의 영역까지 좀먹은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한편 이번 보건산업 기술 수준 조사는 HT(Health Technology) 차원에서 미래 유망 기술을 선정한 부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인하대 박소라 교수(글로벌 줄기세포·재생의료 연구개발촉진센터장)는 “기존의 BT(Bio Technology) 위주에서 HT로 보건산업 기술을 접근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며 “앞으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기술 수준 조사가 이뤄지고, 그 결과를 토대로 의료비를 절감하고 성정 잠재성이 높은 유망 기술에 대한 투자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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