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현안브리핑>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가입자 사이에서 매년 이루어지는 수가협상 과정을 보면 밀고 당기는 지루한 싸움만 지속적으로 전개될 뿐,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악순환만 매번 반복되고 있다.

왜 이렇게 지루한 '제로섬' 게임만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는 이유는 수가계약 당사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만족할 만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의료계 또한 이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공급체계는 상당 부분이 의사 개인이 비용을 투자해 운영하는 민간의료기관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공공의료 영역을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한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의료수가)을 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수가 현실은 냉혹한 실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의료기관 관리에 소요되는 모든 제반비용 또한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주소다.

정부에서는 무너져가는 동네의원을 살린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의료제도를 쏟아 내고 있다. 이 또한 의료기관 경영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의료계를 옥죄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 시키겠다는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를 보전해 줄 것을 목청 높여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물론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가 적정 수준으로 인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하지만 적정의료수가 못지 않게 보존을 요구해야 할 항목이 바로 진찰료(상대가치점수)에 반영되지 않은 의료기관 관리비용이다.

현재 폐기물 처리비용, 진료기록 보관에 따른 비용,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교육비용, 특수의료장비 관리자 교육비용, 병원감염관리비용 등 의료기관 관리에 따른 부대비용 모두를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의료폐기물을 위탁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탁업체간 담합이 의심될 만큼 의료기관에서 위탁업체를 변경하기 어려운 구조라 처리비용도 증가하고 있는 등 의료기관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진료기록 보관의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보관장소가 부족하거나 관리 인력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의 요인으로 진료기록 보관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교육비용의 경우에도 현재 의무인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에 대한 관련교육 수수료 35,000원을 전적으로 의료기관에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수의료장비관리자 및 품질관리업무 실무자가 받고 있는 특수의료장비관리자교육의 경우 50,000원에서 70,000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교육을 받는 의료기관에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인 바, 정부차원의 보상책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특수의료장비관리자 교육은 의료법 제38조(특수의료장비)에 따라 보건복지부로부터 특수의료장비 품질관리검사 업무를 위탁 받아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에서 독점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정부에서 진정으로 무너져 가는 동네의원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이 독점하고 있는 특수의료정비 품질관리검사 업무를 민간기관에 위탁해 수수료를 낮출 필요성도 있다.

병원감염비용의 경우 감염병 관리 및 예방에 대한 의료기관의 적극적, 자율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의료장비 소독실시 및 소모성 일회용 의료기구 재상용 방지 등 병원감염 예방 차원에서 의료기관에서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의료수가에 반영되지 않은 의료기관 관리비용을 따진다면 수천억원에 육박할 것이다. 이 금액이 진찰료에 반영이 된다면 의료기관 운영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매년 물가인상율을 반영한 적정한 의료수가 인상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그동안 의료수가로 보존 받지 못한 비용을 보존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경제를 살리고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각자가 장롱 속에 깊숙히 잠자고 있던 금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십시일반 모은 것이 대한민국 경제를 재건하는 밑거름이 됐다.

일차의료 활성화와 무너져 가는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해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적절한 보상기전 마련 차원에서 향후 진찰료 개정작업 시 폐기물 처리비용, 진료기록 보관에 따른 비용,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교육비용, 특수의료장비 관리자 교육비용, 병원감염관리비용 등을 반드시 의료수가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의료계도 의료기관 관리에 따른 부대비용은 의료기관 개설자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동안 낙전 개념으로 생각했던 새로운 수가 항목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정부도 말로만 무너져가는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겠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일차의료기관을 살리는 길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부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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