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 이종훈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우리사회가 의료계에 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영기 교수님 등이 쓴 <생명윤리와 윤리교육>을 통하여 생명윤리를 포함한 윤리교육의 필요성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윤리의 기본이 될 도덕성을 갖추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도덕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도덕철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를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쾌락과 고통의 선택, 즉 선과 악의 선택에 있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은 지식의 결여에서 나온다.(프로타고라스)”, “분명히 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욕구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악인데도 사람들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을 모르거나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선을 욕구하는 것이다.(메논)”라고 주장하고 있어 도덕적 선(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앎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 자연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달리 인간의 질서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즉 우리의 삶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을 깨닫기 위하여 부단하게 생각하고, ‘덕은 곧 지식이다.’라는 지행합일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도덕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도덕지(道德知)는 곧 인생의 참목적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기 때문에 덕을 가르칠 수 없고, 다만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쇠파리’ 역할을 할 따름이라고 겸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길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기왕의 세력을 쌓고 있던 소피스트들의 반발을 얻어 시민재판에 회부되고 사형을 언도받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아테네에서 도덕철학을 내세운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는 이종훈 교수님의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주에 끝난 총선과정에 화제가 되었던 젊은이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이슈와 같이 생각해볼 무엇이 있을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텍스트는 눈술과 토론을 위하여 기초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하여 쉽게 정리되어 있어 저같이 인문학이나 철학적 배경이 두텁지 못한 사람도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요체는 델포이신전의 대리석벽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그노티 세아우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는데,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첫째,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단계에서는 반어법(Socratic irony), 즉 논박술(elenchos)로서 자신이나 상대방의 무지를 확인함으로써 진리를 스스로 깨닫기 위한 준비단계이고, 둘째, 영혼(靈魂)을 활용하는 단계에서는 산파술(maieutike)로서 이성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망각된 진리를 스스로 기억해내는, 즉 직관하는 작업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명예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접 민주제도에서 남들보다 눈에 띄기 위해서는 웅변과 수사학적 재능이 필요하였습니다. 당시 각광받는 소피스트들은 청년들에게 돈을 받고 출세하는 기술을 가르쳤는데, 논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정당한 근거가 부족하면 남이 보기에 그럴 듯한 논리를 개발하고 상대방의 의견보다 낫게 보이게 하는 궤변을 동원하는 법까지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의(正義)란 [논쟁에서 뛰어난] 강자의 이익”이라는 주장도 나왔다는 것입니다.(4쪽)

소크라테스의 시대 아테네에 있는 델포이 신전에서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이 나왔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지혜롭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면 이를 깨닫게 해주려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화제가 되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으며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을 믿는다는 죄목으로 시민재판에 회부한 것이고,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스스로를 변론하게 됩니다.

변론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로부터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그들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법이 자신을 개별적으로 불러 가르쳐주거나 충고해주는 경우, 만약 내가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내가 본의 아니게 하는 행위라면 당연히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49쪽) 또한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은 재판과정에서 국가가 믿는 신들을 모독한다고 바뀌었는데 그 과정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하여 배심원은 280:220으로 유죄평결을 내렸는데, 고소인들은 소크라테스를 사형시켜줄 것을 요구한 반면 배심원들은 납득할 수준의 벌금형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2차 변론을 통하여 누구에게도 고의적으로 해를 끼친 바 없다는 점을 확신하나 배심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벌금형을 받는 경우에는 벌금을 낼 재산이 없다는 점, 국외추방형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현재 방식의 교육을 멈출 수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2차 변론은 배심원들이 360:140으로 사형을 평결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는데, 소크라테스가 배심원의 선처를 호소하지 않고 젊은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부귀와 명예를 쫓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영혼을 돌보라고 질타하였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에서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소개하고 사형판결이 있은 다음,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소크라테스를 면회 온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는 장면과 소크라테스가 이를 거절하는 이유, 그리고 아테네 법률의 논고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누구와 합의한 것들이 올바른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크리톤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파멸을 바라는 자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것’이므로 탈옥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자신의 탈옥으로 인하여 누군가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 나라와 조국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해야만 한다는 사실, 올바름의 본성에 입각해 나라와 조국을 설득해야만 한다는 사실, (…) 나라와 조국에 대해 폭력을 쓰는 것[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훨씬 더 불경한 짓이라는 사실도 모르는가?(135쪽)”라고 크리톤을 설득하는 장면을 보면,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그 악법이 만들어진 절차가 올바른 것이었다고 하면 지키되 그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치른 총선과정에서 저는 총선의 승리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경향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강영안교수님은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인문학과 철학을 외면하고 있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할 목표나 관심보다는 즉물적인 현상에 매달리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 진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외부의 충동질에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을 이용하려는 지도자는 많은데, 젊은이들이 참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려는 지도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연말에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도덕경은 “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라고 네 종류의 지도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량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도 그렇고 대통령 역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분이면 좋겠는데, 그런 분이 없다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분이라도 되기를 기원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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