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 산정 앞두고 심평원 무리한 조사에 병원들 발끈…병협 업무처리도 논란

지난 3일 대한병원협회에서 '비급여 조사 설명회'가 열렸다.

맹장과 치질, 백내장, 제왕절개 등 7개 질환군의 입원 환자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오는 7월부터 병원급 의료기관, 내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급 이상 전체 의료기관에 의무 적용된다.

이를 위한 법 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이미 포괄수가 전면 확대를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거쳐 지난 3일로 의견수렴을 마친 상태.

하지만 적정 포괄수가를 산정하는 작업은 상당히 더디다.

기존 포괄수가를 최근의 의료현실에 맞게 조정하는데 필요한 7개 질환군에 대한 원가계산 작업이 지지부진한 때문이다.

7개 질환군의 원가계산을 위해서는 병원들의 비급여 자료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병원협회 등의 일처리가 중구난방으로 이뤄져 병원들만 곤란을 겪고 있다. 

복지부는 7월까지 적정 수가를 산출해 적용하자는 주장이고, 심평원은 이를 위해 대상 병원들에게 이번 주까지 비급여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병협은 지난 2일에서야 비급여 자료 요청 관련 공문을 회원 병원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평원 “비급여 조사 안되면 예전 자료 써야”

실제로 지난 3일 병협이 주최한 비급여 자료 요청 설명회에 참석한 병원 관계자들은 심평원 등의 무책임한 행태를 두고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심평원은 이날 설명회에서 행위별수가 의료기관 71곳(상급종합병원 4곳, 종합병원 20곳, 병원 22곳, 의원 25곳)과 포괄수가 의료기관 45곳(종합병원 4곳, 병원 13곳, 의원 28곳)을 대상으로 7개 질환군의 비급여 진료비를 조사한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조사 대상 병원은 진료비 청구 비용에 따라 상(상위 25%), 중(25~75%), 하(76~100%)로 분류했다.

비급여 조사표 양식.

조사 대상 환자는 안과, 이비인후과, 외과, 산부인과 중 과목별로 해당 수술을  받은 입원환자이며, 대상 기간은 2011년 7월부터 12월 사이 진료비를 기준으로 한다.

비급여 조사표에는 ▲요양기관 명칭 ▲진료과 ▲환자 주민등록번호 ▲요양개시일 ▲EDI코드 ▲단가 ▲총횟수 ▲금액 ▲주진단코드 ▲주시술코드 ▲질병군 번호(포괄수가 의료기관 해당) 등을 기재해야 한다.

다만 법정비급여와 예방진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의 진료는 조사 항목에서 제외했다.

심평원의 발표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설명회에 참석한 병원 보험심사 담당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요양기관 적정성평가 등으로 업무가 빡빡한데 이번주 안으로 하라는 게 말이 되냐”며 “만약 자료 수집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되물었다.

이에 심평원 포괄수가부 관계자는 “(포괄수가제 전면 확대는) 우리 손을 떠난 일이다. 따라서 기한 내에 자료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만에 하나 비급여 자료 수집이 어렵게 되면 2009년에 조사한 비급여 실태 자료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심평원의 대답에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자료 수집이 안 되면 예전 자료를 쓰겠다는 것은 결국 수가가 삭감된다는 것 아니냐”며 “이는 우릴 협박하는 것으로 들린다. 비급여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시간을 갖고 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앞서 심평원은 2009년 연구용역을 통해 전국 65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급여 실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2009년 자료의 경우 설명회에 참석한 심평원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조사 기관이 진료비 규모별로 편차가 크고 의원급 위주의" 통계 자료인데다 "이 자료를 그대로 포괄수가에 적용하는 게 우려된다"고 언급할 정도다.

병원들, 일처리 어설픈 병협에 쓴소리

병협의 업무처리 방식도 지탄의 대상이 됐다.

병협은 지난 2일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포괄수가 수준을 최근 의료현실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7개 질병군과 관련된 비급여 진료내역 자료를 요청하오니 오는 5일까지 보험국으로 제출해 달라”며 “아울러 7개 질병군 비급여 자료 조사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오니 참석바라며, 참석여부를 3일 오전 10시까지 본회 보험국으로 회신해 주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실제로 병협은 3일 설명회를 갖는 이유로 자료 요청 기간을 4월 6일까지로 연장했다.

결국 병원들은 4월 4일부터 4월 6일까지 3일 동안 비급여 자료를 조사해 보고해야 하는 셈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병원 관계자는 “표본기관 116곳을 관련 협회가 자율적으로 선정한다고 돼 있는데 그 의료기관들에게 별도로 통보가 된 상태냐”고 묻자 병협 관계자는 “630여곳에 팩스 등을 통해 해당 공문을 어제(4월 2일) 보냈다. 표본보다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는 게 목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한 병원 관계자는 “그렇다면 랜덤 샘플링을 한다는 건데 진료비 규모별로 자료 수집이 가능한가” 되묻고 “진료비 규모별로, 요양기관종별로 샘플 기관 수에 맞춰 자료를 제출한다고 보장할 수 없지 않냐”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병원들의 불만을 산 것은 비급여 조사의 목적이 불분명하고 조사 항목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심평원은 바급여 조사 시 EDI코드의 경우 임의비급여 항목이 있다면 자체 병원코드로 기입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병원들은 병원마다 임의비급여에 대한 해석이 다른데다, 본인부담 기준에 맞지 않아 청구하지 못하는 비용은 반영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상급종합병원의 한 관계자는 “일명 '프리코드'라고 비용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또 정상군 판별 기준 등 불합리한 수가 구조도 있다”며 “포괄수가제에서 이런 부분을 보전해야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제대로 비급여 조사를 하려면 몇몇 병원들의 원가분석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심평원에 대한 불신도 감지됐다. 한 병원 관계자는 “비급여 자료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냐”며 “그동안 병원들이 심평원 자료 조사에 응해왔지만 그런 노력이 결과에 반영되는 건 미미했다. 그러니 신뢰가 떨어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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