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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찾아서…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미국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1976년 발표한 <뿌리 Roots:The Saga of American Family>는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헤일리의 선조는 노예상인에게 붙들려 신대륙으로 끌려오는 동안 그리고 정착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는데, 헤일리가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선조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의 가계를 거꾸로 뒤쫓아 정리한 <뿌리>는 훌륭한 혈통학적 연구보고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족보라는 기록문서를 통해서 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사회에서 가족의 뿌리에 대한 기록을 유지하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은 족보와 가계의 뿌리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생뚱맞아 보일 것입니다만 최근에 크게 주목받고 있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보니 불과 얼마 전에 다윈의 제안으로 인류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던 진화론이 발전해온 발자취를 뒤쫓은 최재천 교수님의 <다윈지능>을 소개한 바도 있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진화론, 그 간결미’라고 제목을 붙인 첫 장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온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진화론의 매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지구상의 생명체가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진화론의 핵심은 다양한 영역의 생명과학이 발전해오면서 발견된 증거들에 의하여 그 이론적 뿌리가 굳건해져왔을 뿐 아니라,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법학 등의 인문 사회 과학 분야는 물론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에른스 마이어교수가 “진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신비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다.”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의 발전과정을 쉽게 풀어 쓴 <다윈 지능>을 통해서 진화론의 얼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오늘 소개하는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는 놀랍게도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현생 인류에 이르는 과정을 뒤쫓고 있습니다. 직계부모 이전 세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은 서구사회의 전통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한국에서는 수 천 년에 걸쳐 규범으로 작용해온 조상숭배라는 개념이 서양에는 없었다는 점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지구 상에 현존하는 생물체에 담긴 생명의 성스러운 메시지는 우리의 조상이 쓴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상에 대한 존경에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프롤로그에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광대한 암흑이 깔려 있고, 여기저기 희미한 빛의 점들이 흩어져 있다. 그 빛의 점에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점은 핵융합의 불길로 타오르면서 주위의 협소한 공간을 데우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항성임을 알 수 있다.”라는 설명으로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던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왜 다른 과정을 거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지 않았는가? 인간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등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선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후손에 전하게 된 것은 지구가 생성된 이후의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그야말로 눈깜박할 사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주와 태양계 그리고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위에 생명체가 나타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의 유구한 세월을 복원하는 일은 인간이 능력 밖의 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한한 힘을 가진 조물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축적되는 지식을 토대로 지구에서 흐른 시간의 흐름을 뒤쫓아 추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생명체의 유전체지도를 해석하게 됨에 따라서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역사를 뒤쫓을 수 있게 됨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생물종을 분류하는 작업을 통하여 세워졌던 진화론의 실체가 분명해지게 된 것입니다.

저자들은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지구 상에서 일어난 일을 쫓고 있습니다. 원시지구의 스프 속에서 무기원소들이 우연히 서로 연결되어 유기분자가 되고 그 유기분자들이 결합하여 자기 복제가 가능한 물질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세월이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오늘날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인데, 이런 과정이 정말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필연이었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으니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겠습니다.

1장 “우주 공간 속 지구라는 행성에서”이라는 제목에서부터 21장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진화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하나 짚어 인류가 어떻게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존재이유는 자신의 복제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함인데, 미생물처럼 간단하게 복제해버리면 끝날 일을 양성(兩性)으로 구분되어, 섹스와 임신이라는 복잡한 과정이 진화의 틀에 들어온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본질은 무엇인지, 폭력과 강간 같은 인류의 공격성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집단 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 이전에는 인류가 모든 지구 생명체들 가운데 최고의 지위에 위치하여 군림하는 ‘만물의 영장’이 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와 지구라는 제한된 삶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나누어 쓰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고생대 페름기가 끝날 무렵인 2억 4500만년 전, 지표상에서 벌어진 격변은 지구 상에 존재하던 생물종의 95%가 절멸하는 대재앙이었다고 합니다. 페름기 말에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동물은 불과 25종이었다는데 그 가운데 10종이 현존하는 척추동물의 98%에 해당하는 4만종의 동물의 선조라고 합니다. 그런 혹독한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와 같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쏟아내는 유해물질로 인하여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고 하루에도 적지 않은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페름기 이후에 새로 등장하는 생물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들은 마지막 장에서 과거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극적인 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0억년 전 생명체들은 내해의 색을 변화시켰고, 20억년 전에는 대기의 조성을, 10억년 전에는 기후와 기상을, 3억년 전에는 토양의 지질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고 어쩌면 미래에 인류 스스로를 파괴시키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닐 것입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 벼락부자가 된 생물종이 무대장치를 바꾸고 다른 종을 멸망시키다가 종국에는 스스로도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일이 반복되어왔고, 인간도 같은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대신할 우세종이 등장하게 되겠지요?

저자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지구 생명계의 일원에 불과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뿌리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의 <다윈 지능>에서 2% 아쉬웠던 부분들까지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무성생식으로 종족을 늘려가던 생명체가 양성으로 나뉘는 과정과 그 이유를 예로 들면, <다윈 지능>에서는 다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예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세이건과 드루얀은 여전히 과학자의 시각으로 설명하면서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은 과학이 인류의 과거에 대한 수수께끼와 우주의 성질을 밝히려 노력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살필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담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조의 뿌리를 찾고 그들을 기리는 이유는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해준데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후손에게도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남기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할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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