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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남과 북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김정용(그린닥터스 개성협력병원장)

꽃샘추위도 물러간 화창한 토요일. 임진각 주차장에 도착한 건 정오 무렵이었다. 이른 시각인데도 이미 임진각 주차장은 나들이 가족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사실 민간인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임진각에서 더 북쪽으로 가려면 정해진 수속을 밟아 관광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코스는 임진각에서 도라산전망대를 거쳐 제3땅굴 체험까지다. 인터뷰 시간이 꽤 남아 있어 얼른 티켓을 끊고 버스에 올랐다.

임진각을 출발한 지 10분 만에 통일대교를 건너 도라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서서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망경으로 38선 너머를 구경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맞춰 전망경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개성공단에 눈길이 멈췄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총 5만 여명에 이르며, 이 중 남한 사람은 800여명에 불과하다. 북한 근로자들의 월급은 11만원 수준인데 일반 근로자에 비해 5~6배 정도 고임금이란다.

2시간 남짓한 관광을 끝내고 임진각 전망대 카페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바로 개성공단 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병원인 '그린닥터스' 개성협력병원의 김정용 병원장이다.

1984년에 경북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국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다가 1999년 가족과 함께 인도 캘커타로 건너갔다. 개성병원 원장직을 맡은 건 2005년부터다.

▲ 도라산전망대서 바라본 북한 전경. 개성공단이 멀리 보인다.

기자가 카페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자 김 원장이 손짓하며 반갑게 맞았다. 그는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국하자마자 임진각으로 차를 몰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대뜸 북한 환자와의 라뽀(Rapport) 이야기부터 꺼냈다.

“매체 이름이 ‘라포르시안’이라고 했죠? 이름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실 북한 환자와 라뽀를 형성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무엇보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는 북한 근로자가 현장에서 심하게 다쳐 병원을 찾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날은 저녁시간이라 북한 의사가 퇴근한 탓에 제가 치료하게 됐죠. 응급처치를 다 마치고 그 환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처치는 20%밖에 못했다. 나머지 치료는 내일 북에서 오는 의사에게 받으세요’라고 안내했어요. 남한 의료가 무조건 최고라는 게 아니라 북한 의료를 어디까지나 존중해주는 자세가 라뽀 형성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되죠.”

그렇다면 같이 일하는 북한 의료진들과의 거리감은 어떻게 해소했을까 궁금해졌다. 김 원장은 의료진과의 라뽀도 역시‘존중’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간호사를 합해 모두 20명의 북한 의료진이 개성병원에서 근무해요. 처음엔 서먹했지만 지금은 곧잘 농담도 한답니다. 주로 의학적 지식을 공유하곤 하는데, ‘이럴 때는 북에서 어떻게 치료하나요’라고 먼저 물어보는 편이죠. 그들의 의학적 성과를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어요.”

김 원장이 북한 환자와 소통에 힘쓴 탓인지 개성병원이 문을 열고 2년만에 북한 정부는 개성병원에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병원 설립 후 2005년 후반기때만 해도 의사는 오직 김 원장 한명 뿐이었다. 현재는 김 원장이 하루에 20~30명, 북한 의료진이 150~200여명의 환자를 볼 정도로 병원 규모가 커졌다. 물론 이들에 대한 진료비는 전액 무료다.

하지만 개성공단 내 유일한 병원이자 남과 북을 잇는 병원이기도 한 개성병원에 국가지원금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린닥터스, 월드휴먼브리지, 하나로의료재단 등을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북한 의료진의 인건비, 약품비, 시설 운영비 등이 꾸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 원장은 상당히 검소했다. 기자와 만나 먹은 커피도 비싸다고 불편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원 초기부터 그는 무보수로 일해왔고, 얼마전부터 약간의 수괴를 받기 시작한 것은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그 수고비마저도 말그대로 ‘봉사’ 수준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는 그만한 봉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개성병원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통일에 있어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해요. 통일이라는 산을 오르려면 꼭 필요한 곳이죠. 통일의 첫 단계는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개성병원은 남북 의료진이 협력하는 곳으로서 통일의료의 모범적인 형태이자 ‘작은 통일’을 이룩하고 있는 거예요. 아픔을 치유하는 곳에서 남북의 경직된 마음이 풀릴 수 있는 곳 아닐까요.”

김 원장이 개성병원에 애착을 갖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이 병원이 북측의 풍토병을 연구하고 이해하기에 최적의 연구장소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아직도 말라리아 환자들이 많다. 실제로 김 원장은 개성병원에서만 최근 수년간 여러명의 말라리아 환자들을 진료했다. 개성공단 외에도 평양이나 사리원 등지에서도 감염병이나 풍토병 환자 때문에 김 원장의 조언을 듣기 위해 걸려오는 전화가 종종 있을 정도다.

“말라리아는 잠복기를 거쳐 겨울에 감기처럼 오거든요. 5일이라는 크리니컬 타임을 놓치면 합병증을 수반하기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져요. 현재 북한 말라리아 환자들은 방역 지원 등으로 예전보다 크게 줄고 있어요. 하지만 DMZ에서 발생하는 모기들이 말라리아를 옮기는 원인이랍니다.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해충의 온상지라는게 아이러니하죠.”

사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열대의학자다. 김 원장이 열대의학에 빠지게 된 건 인도에서다. 그는 간호학을 전공한 부인과 의료선교의 꿈을 펼치지 위해 마흔 살을 넘겨 인도행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말라리아 환자 3만여명을 진료했고, 캘커타의대에서 열대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에서 의료선교활동을 접고, 개성병원 초대원장직을 수락하게 된 것도 말라리아 연구와 의료봉사를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내 의료계의 말라리아 등 풍토병 이해 수준은 낮은 편이다. 출국 전 여행자에게 적절한 예방약을 쓰지 못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특히 파주나 문산 등지의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라리아 전염의 위험이 있어 이들의 수혈을 받지 않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열이 오르지 않는 한 혈액 속에 말라리아균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말라리아 얘기에 심취해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자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말에도 강의 스케줄로 바쁘다는 김 원장의 말이 생각나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데요.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단한 삶을 사는건가요?”

“지금 전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살아요. 아내는 인도에서 계속 봉사하고, 두 아들은 영국에서 곧 의대를 졸업하죠. 한국엔 집 한 채 없어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보화’를 찾는 삶이 즐거워서죠. 돈으로 살 수 없는 보화는 ‘사람’입니다. 북녘 땅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평생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또 그런 사람을 찾는 것. 그런 큰 보물을 찾는 일이죠. 어쩌면 저와 가장 가까운 자식들도 보물이죠. 아들 둘다 저희 부부처럼 봉사의 길을 걷겠다고 하니 말이예요.”

마지막으로 김 원장에게 국내 의료계나 제약사가 개성병원을 도울 일이 없겠냐고 물었다.

“여전히 수액이나 약품이 모자라요. 특히 북쪽에서는 영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 수액 수요량이 많은 편이죠. 수액을 생산하는 업체가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것도 북한 의료를 도와주는 방법 중 하나죠. 나아가 북한에 상대적으로 많은 수인성질환을 연구하는 인프라도  공단 내에 설립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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