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 개의 연극 / 박철호 지음 / 반비 펴냄

우선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이 잠시 연극판을 기웃거렸던 옛날 기억을 채어낸  낚시라도 되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면서 관람한 연극에 대한 감상들을 정리하여 소개한 책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 유럽 무대예술을 제대로 소개하는 첫 번째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극연출가이자 비평가인 박철호님은 MBA를 공부하러 간 뉴욕에서 언어를 익히려 신청한 연극수업이 계기가 되어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극수업을 통하여 뒤늦게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날아가 파리, 베를린, 그리고 마드리드 등에서 연극과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술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우기 위하여 다른 이들의 작품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다른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히 저자와 비교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만 연극에 관한 저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제가 대학 연극동아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예과2학년이 끝난 겨울방학이었습니다. 그 즈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동아리가 신입생환영공연으로 준비하던 조해일작 <건강진단>의 연습실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워크숍 등을 거쳐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이해하고서는 장 아누이가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쓴 <안티고네>를 올리는 가을 대공연 준비에 참여하였습니다. 연극에 빠져있던 친구는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출이론을 입에 달고 지냈지만, 연기력은 논할 처지가 안되고 시작도 늦은 저는 스태프로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이니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연극공연이 많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도 극단에서 올리는 상업극에서 대학극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관람하고 무엇이든 배워 우리 무대에서 활용하려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의과대학과 신학대학만으로 된 대학이고, 엄청난 분량의 수업에 치이는 학창생활이었지만, 다양한 동아리활동이 펼쳐지던 때입니다.

우리 대학의 연극동아리는 당시 종합대학교까지 포함해서 대학연극 3대 동아리에 든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 몰리에르와 같은 극작가의 정통 희극작품들을 주로 올려 작품마다 장안의 대학생들 간에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기하는 단원의 경우 시쳇말로 아이돌처럼 많은 팬들이 있어 공연 때마다 몰려들곤 했습니다. 드라마센터에서 올린 작품의 경우는 몰려든 관객들로 인하여 유리창이 깨지는 불상사가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저도 제작에 참여했던 <안티고네>의 경우도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능을 타고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여 나름대로의 표현방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유럽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10년 동안 1,000편이 넘는 작품을 관람하고 그 느낌을 빠짐없이 기록했다는데, 그 가운데 엄선한 16편의 연극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독일작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소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으로도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연습을 하면서 작품을 구성하여 작가가 따로 없는 아리안 무누슈킨연출의 <레 제페메르(하루살이 같은 삶들)>도 있습니다.

연극은 같은 대본을 가지고도 연출자의 해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는 종합예술입니다. 그리고 같은 팀의 공연이라도 매회마다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배우가 같은 등장인물을 맡아 연기를 하는 요즈음 시스템에서라면 당연히 배우에 따라 등장인물의 표현이 차이가 나고, 심지어는 같은 배우가 연기하더라도 매회 마다 배우가 표현하는 감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 번째 작품 곰브로비치의 <이본, 부르군트의 세자빈>을 읽은 느낌을 소개합니다. ‘이토록 흉측한 신데렐라’라는 표제를 달아 놓은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입니다. 흉측하고 못생긴 이본이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왕자의 손에 이끌려 왕궁으로 들어가지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론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미움을 받고 결국은 왕자마저 등을 돌리고 말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자가 이 작품을 맨 처음 소개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연극을 보게 되었다.(19쪽)”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베를린에서 처음 본 연극이라는 이유로 맨 처음 등장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16편의 연극이 모두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으니 소개하는 순서가 작품의 우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첫 번째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든 첫 작품을 읽은 소감은 불쌍한 이본의 삶을 연출가가 어떻게 표현하더라는 것보다는 <베를린, 천개의 연극>이라는 책을 쓴 작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요? 김철리단장께서 ‘단기 베를리너이자 이방인으로서의 저자의 일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 베를린 사람들의 삶과 사회가 베를린의 현대 연극 무대가 선명하게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고 추천의 글을 쓰신 이유가 실감됩니다. 먼저 연극을 감상하던 날의 작가의 일상으로부터 공연장으로 들어가 연극을 감상하기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작가와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의 극단들이 제공했다는 좋은 질의 공연사진들을 곁들여, 작품과 등장인물을 소화한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같이 엮어서 베를리너 앙상블의 객석에 앉아 작가와 같이 한편의 연극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덧붙이는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이야기 역시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글재주가 뛰어나지 못한지라 하루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편하게 풀어보았다.(11쪽)”고 지나치게 겸양을 떤 저자의 글솜씨에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작품을 다 읽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저자의 글솜씨는 ‘바로 짧게 끊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짧게 끊어 쓴 글은 읽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연극을 공부하러 간 곳이 “왜 베를린이었는가?”도 궁금한 점이었습니다. 베를린에는 약 50개의 극장이 있는데, 베를린연극의 특징은 레퍼토리극장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베를리너앙상블, 도이체스테아터, 폴크스뷔네, 샤우뷔네 같은 유명한 레퍼토리극장이 베를린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도이체스테아터의 200편, 베를리너앙상블의 80편을 포함에서 4개의 레퍼토리극장에서 올리는 연극은 2년 동안 매일 다른 연극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베를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섹시하다”라고 한 것처럼 베를린을 세계 공연예술의 메카라고 부를 만 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책에 빠져든 또 다른 이유는 저자가 소개하는 16편의 연극들 가운데 <고도를 기다리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파우스트> 그리고 <한여름밤의 꿈> 등, 4편은 비록 국내에서지만 이미 관람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두어도 한판의 바둑’이라는 바둑해설자가 흔히 하는 말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연극이란 대본을 바탕으로 하여 연출가가 해석하는 작품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니 한판의 바둑과의 비유가 참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해석은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어지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이디푸스의 테베왕국은 오이디푸스가 성을 떠난 뒤, 두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골육상잔을 벌이고 결국 동생 에테오클레스가 차지하게 됩니다. 자신이 차지할 왕위를 빼앗긴 폴리네이케스는 외부의 세력을 빌어 테베를 공격하다가 형제가 모두 죽음을 맞고 오이디푸스의 동생 클레온이 테베의 왕이 됩니다. 클레온은 테베를 배신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벌판에 버려두고 누구든지 이를 매장하는 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립니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오빠의 시신이 벌판에서 썩어가는 것에 분노하고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여 클레온과 정면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클레온은 아들 하이몬의 약혼자이기도 한 안티고네를 처형해야 하는 운명이 괴롭지만 국가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결국은 안티고네를 처형하게 되고, 하이몬 역시 안타고네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하이몬의 어머니 에루리디케 역시 자살을 하고 마는 비극으로 극이 마무리됩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쓴 브레히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일 제3제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의로운 일을 감행한 뒤 마침내 죽음을 택한 안티고네와,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고도 자신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전후 독일의 나치 군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고 싶었을 것(108쪽)”이라고 작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학을 보면 신의 뜻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신화에서 만나는 그리스의 신들이 항상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들이 신의 뜻을 빌어 스스로의 입장을 세우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외세를 빌어 고국을 공격한 오빠를 묻어주어야 한다는 인륜을 내세운 안티고네의 무모함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은 아닐까요? 세월이 가면 클레온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새롭게 해석한 안티고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양기화의 Book소리'에 트위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평에 관한 소셜댓글을 남겨주시면 매주 5분을 추첨해 해당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댓글을 남긴 후 메일(bus19@rapportian.com)로 주소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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