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직관 / 존 캐스티 지음 / 이현주 옮김 / 황상민 해제 / 반비 펴냄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는 가운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임금의 사랑을 그리고 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물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 관상감과 성수청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상감은 천문, 지리, 명과학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천문을 담당하는 관원들은 기후 관측과 책력제작을, 지리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풍수지리학을 토대로 왕궁·왕릉 등의 터를 잡는 일을, 명과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길흉화복을 점쳐 왕실의 합궁일이나 길일·태일을 정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수청은 조선 전기에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비는 굿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관상감이 성수청에서 할 일까지 넘나드는 것 아닌가 싶은 장면도 있었지만, 왕조에서 이러한 부서를 두었던 것은 결국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양에서도 별점 혹은 유리구술점을 치는 점술가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 일을 알고 싶은 것은 동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점술가나 우리의 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못한 것은 아마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개인의 미래를 미리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쳐도 한 나라, 혹은 사회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일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밀한 값을 갖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값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의 원리도 정규분포곡선과 일반적인 통계값으로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면, 사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현상의 미래 역시 예측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존 캐스티 박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한 미래탐구학회 케노스 서클(Kenos circle)에서는 복잡성 과학을 적용해 기존의 통계적 방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데, 캐스티 박사가 쓴 <대중의 직관>을 통하여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록에서도 요약소개하고 있는 주가변동에 관한 엘리엇파동이론을 통하여 “어느 인구집단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사건의 유형을 결정한다”는 것을 핵심이론으로 하는 로버트 프렉터의 사회경제학의 논리를 통해서 미래예측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프렉터가 제안한 사회적 인과성의 사회경제학적 가설은 “사회분위기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사회분위기의 동향과 범위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행동을 포함한 사회적 행동의 특징을 결정짓는다. 달리 말하면,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사회분위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를 이루려는 인간의 충동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인데, 최근 우리 사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국내외 사회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정 시기에 어떤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이는 그 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며 고대한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사회적 분위기가 부정적인 경우 집단은 미래를 비관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형태 사이에는 당연히 분위기가 전환되는 이행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긍정적 분위기와 부정적 분위기라고 하는 회색지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는 ‘상승하는 긍정적 분위기’, ‘최고조에 달한 긍정적인 분위기’, ‘쇠퇴하는 부정적 분위기’, ‘바닥을 친 부정적인 분위기’의 네 가지 단계가 파동처럼 순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학에서는 도미니크 모이지가 <감정의 지정학>에서 다룬 희망, 두려움, 수치라는 세 가지 사회적 분위기에서 단서를 얻어 상승분위기를 ‘희망’으로, 최고조의 분위기는 ‘오만’으로, 쇠퇴하는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바닥을 친 분위기는 ‘절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자는 2001년 가을 일어난 엔론사의 파산을 비롯하여 과거의 대형 국제전쟁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지표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이라는 우연이론가의 주장에 대하여, 알자스 로렌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유럽의 동맹체제, 발칸지역을 지배하려는 오스트리아의 야심, 심지어는 군수품 제조업자들과 국제은행가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미 전쟁의 위기가 차곡차곡 쌓아갔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점에 주목한 것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도발이 남북한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저자는 지각의 판구조론으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각을 나누고 있는 몇 개의 판이 서로 부딪히면서 생기는 지진을 관찰해보면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응력을 덜어주는 조그만 떨림마저도 중단되는 알파국면이라고 부르는 침묵의 시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그만 충격이 수없이 발생하는 베타국면이 시작되고 마침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판끼리의 부딪힘이 적절한 빈도로 일어나 응력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다 보면 결국은 대형 지진이 일어나 쌓였던 응력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국가 간의 갈등 역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6.25남침전쟁처럼 은밀한 가운데 전쟁준비를 진행해 오다가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해야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치국면을 긴장으로 몰고 가는 도발을 반복하면 반대편에서는 수비태세를 강화하여 대응력을 높이게 됨으로, 막상 전면전으로 발전하였을 때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적 흐름을 고찰한 열강의 몰락의 예를 들어, 유행의 탄생으로부터 몰락까지 부침이 심한 영화, 음악, 스포츠, 패션과 같은 문화는 물론, 한 국가의 통치세력의 변화와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국내외의 정치적 위기에서 경기의 순환과 같은 경제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분위기를 분석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기도 찜찜할 수도 있는 사례는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착공하였다면 그 나라의 주식시장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라는 마천루지수입니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 건설, 대만의 타이페이101 건설, 두바이의 부르즈 두바이 건설을 전후하여 해당국가의 증시지수를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롯데월드타워123가 2009년에 착공되어 2015년에 완공예정에 있다는 저자의 인용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대선의 향방에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정치동향은 주식시장의 회전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즉 투자자들은 후보의 성향에 따라서 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거나 하락할 것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인데, 정권의 정책방향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꾸로 시장의 동향으로 정권의 향배를 판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식시장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동향은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한 인구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는 긍정적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경우 현직대통령이 유리하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단임제의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을 계기로 하여 가속되던 부정적 사회분위기가 참여정부 시절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의료계로서는 언제까지나 절망할 수밖에 없던 사회분위기가 다소 상승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는 판단이 들만도 한데, 사회나 정책당국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은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요?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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