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터뷰 the만나다
[The만나다] “의료는 건강에 도움되는 모든 걸 포괄…의사만큼이나 로지스티션도 중요”엠마누엘 고에(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소 사무총장)

최근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전세계에서 27번째이고, 아시아에선 3번째다. 1971년 의사와 기자에 의해 설립된 국경없는 의사회는 '중립·공평·자원'이란 3대 원칙 아래 전쟁 또는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름 그대로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인도주의라는 대의에서 인명구출을 최우선으로 활동한다.현재 국경없는 의사회의 한국 국적 활동가는 의료인 3명과 행정직 1명에 불과하지만 한국 사무소 오픈으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국 사무소는 프랑스 출신인 사무총장과 한국인 직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엠마뉴엘 고에 한국 사무소 사무총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약 14년 전부터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의료인이 아닌 고등학교 미술 교사 출신이다. 고에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 사무소 개설 배경과 향후 구체적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이제서야 한국사무소가 문을 연 배경은 무엇인가.“국경없는 의사회가 만들어진지 40년이 지났으나 주 활동지역이 유럽, 미국, 캐나다 등 서양 국가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의사회 내부적으로 서양에 국한돼 있던 사무소를 전세계적으로 확장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러한 행동의 첫 단계가 바로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재정 지원이 가능한 나라로 우수한 인재도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무소에서는 모금, 인재 채용, 홍보 등을 담당하게 된다.”-아시아에서는 일본, 홍콩에 이어 3번째 사무소 오픈이다. 왜 이렇게 늦어졌나.“일본은 20년 전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도 경제적인 상황이 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사무소 오픈이 쉬웠다. 홍콩은 베트남에 문제가 일어났던 시절 임시적으로 생겼다가 정식 사무소로 바뀐 것이다. 한국 사무소 오픈은 물가 등 여러 가지 상황도 고려해서 이뤄졌다. 내가 한국 사무소를 열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은 3년 전으로 그 때부터 준비해왔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다. 한국 사무소 설립시 분단국가라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나.
“그것은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들어와야 한다는 그런 연결고리는 전혀 없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 내 탈북자들의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했던 프로그램은 그 당시에 필요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굳이 한국과 국경없는 의사회를 연결시키고자 한다면 노벨평화상을 받기 3년 전인 1996년에 서울평화상을 받았던 때로 생각할 수 있겠다.”-지난 1996년부터 98년까지 약 2년간 북한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다가 철수한 바 있다. 혹시 북한에서의 의료봉사 활동을 재개할 계획도 갖고 있나.“현재로선 한국 사무소에서 직접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국경없는 의사회 전체적으로는 북한 내에서의 의료봉사 활동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 의사회 본부에서는 이미 북한에 사람을 보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황을 파악 중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추후 의사회 내부적으로 북한을 지원하게 되면 해당 정보를 공개하겠다.”-국내에서 활동가 채용은 어떻게 진행되나.“한국사무소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인터뷰 요청을 받으면 일본의 채용 담당자와 영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며 마지막 인터뷰 때만 일본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초창기라 이런 과정을 거치지만 한국 사무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모든 채용 절차가 한국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합격하면 일본, 파리 등에서 의사회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된다. 우리는 최소 3년 이상의 실무 경험이 있는 의사를 원하며 NGO를 통해 해외에 다녀온 분들에게는 더 좋은 기회를 드리고 있다.”-활동가 중에 의대생도 있나.“지금은 불가능하다. 사실 젊고 패기있는 의대생들이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하지만 의사회에서 일하려면 3년 이상의 임상 경험이 필수다. 하지만 의대에서 우리에게 설명회를 요청한다면 할 의향이 있고 의사회 소속이 아닌 협력으로 일하는 것은 가능하다.”-의료인 출신이 아닌데 어떻게 국경없는 의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나.“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일할 때 몇몇 학생들이 나에게 ‘인디아나 존스’라고 부르는 등 모험적인 면이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면으로는 의사회 뿐 아니라 다양한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하는 부모님과 인도에서 입양한 여동생 등 가족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한국 활동가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국사무실을 런칭하기 위해 한국 내에서 거주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쓰나미 재해가 발생해 의사회 사람들과 팀을 꾸려서 도와주러 갔다. 그 때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일본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고 나왔다. 한국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발굴해서 현장에 보내기 위함이다.”-국경없는 의사회에는 의료인 뿐 아니라 비의료인들도 많이 근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없는 의사회’라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의사도 중요하지만 물류를 공급해주는 로지스티션(Logistician, 물자 공급 전문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지스티션은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막고 물이 필요하면 직접 우물을 파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수술을 하거나 약을 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는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향후 활동 계획은.“한국 내에서 국경없는 의사회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이벤트와 캠페인 등도 기획하고 있다. 지금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웹사이트 구축으로, 이를 통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 아직은 포털에 검색하면 영문 홈페이지가 나오지만 한국어 홈페이지가 나올 수 있도록 포털사이트 측과 논의하고 있다.”

양혜인 기자  lovely@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혜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