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하다. 최근 한 국회의원의 경솔한 문제제기가 촉발시킨 이른바 'MRI 바꿔치기' 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일대 혼란을 겪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의료계와 의사사회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지난 22일 박원순 서울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MRI 재촬영을 실시한 후 판독 결과를 공개했다. 이른바 '공개신검'을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강용석 의원이 제기한 병역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주장이 거짓말이 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뤄진 공개신검으로 인해 강용석 의원이 제기한 각종 의혹은 일단락됐고 사회적 논란도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의료계와 의사사회를 향한 새로운 논란이 이제 막 시작됐다. 병역비리 의혹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일부 의사들과 의사단체가 이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담갔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히고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며 감사원에 병역의혹에 대한 감사를 촉구했다. 또한 어떤 의사단체는 강용석 의원의 요청을 이유로 MRI 영상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공개적인 성명서 형식을 통해 발표했다.

당연히 의사 개인, 혹은 의사단체 차원에서 사회적 논란이 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들의 이러한 의견 표명이 사회적 논란을 해결하는 중요한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그런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 있어서는 다소 성급했고, 의료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취해야 할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아쉬움을 남겼다.       

우선 강용석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방식이 타당하지 못했고, 특히 의료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료법상 MRI를 비롯한 환자의 개인진료정보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고, 진료 과정에서 취득한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윤리 덕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강용석 의원은 불법적인 경로로 개인의 진료정보를 입수했고, 또한 이것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의사, 혹은 의사단체가 분명한 목소리로 질타(전국의사총연합은 의학적 소견을 밝히는 성명서에 불법적인 진료정보 취득 문제도 제기했다)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삼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언급하거나 문제를 삼았지만 제기된 의혹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불법적 의료정보 취득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의사사회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의사들도 많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아쉽다.  

또 다른 문제는 강용석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있어서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을 간과한 채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강 의원이 공개한 MRI가 박주신씨의 것이었는지, 그리고 박주신씨의 정확한 몸 상태가 어땠는지 명확히 확인 한 뒤에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는 것이 의사로서 취해야 할 ‘의학적 태도’가 아닐까 싶다.

증상이나 의료영상만 보고 판단하는 의학적 소견이 확진과 엄연히 다르다 하더라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자 했다면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공개된 MRI 영상만을 놓고 판단한 의학적 소견임을 감안할 때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변명한다면 의사의 전문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출처도 불분명하거니와 불법적으로 취득한 MRI 영상 하나만 가지고, 정치권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 섣불리 의학적 소견을 제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착임이 분명하다.

그 결과, 의혹을 불식시키기보다 논란만 증폭시켰고, 전문가들의 의학적 소견을 신뢰한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 사안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인할 꼴이 됐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의사들과 의사단체의 의학적 소견을 근거로 감사원에 병역의혹에 대한 감사를 촉구했다. 

이미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의사들과 의사단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상황이 상당히 안 좋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분명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정확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만, 또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분명한 검증과 합리적 의심을 통해서도 인정받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 모로 아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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