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계 내부적으로 의사보조인력(Physician's Assistant)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PA란 말 그대로 의사를 도와 환자 진료업무를 보조해주는 직무를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PA와 관련된 법적 규정이 없다보니 이를 정의하기가 상당히 애매하다.

문제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병원에서 의사를 도와 수술장에서 간단한 봉합시술과 약물처방 등의 업무를 전담하는 PA간호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간호사회 등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국내 병원에서 활동하는 PA간호사 수는 2,000여명에 육박한다.

PA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도 상당히 광범위하다.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의 영역을 넘나드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한간호협회가 발표한 ‘전담간호사 운영현황 및 업무실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상당수 PA간호사들이 의사의 지시를 벗어난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PA간호사가 자율적으로 약물처방을 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약물의 용량 및 투여방법을 재조정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병원들이 PA간호사를 적극 활용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흉부외과 등 외과 계열에서 전공의들의 지원기피가 심화되면서 수술장 보조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병원에서 외과쪽 진료과의 전공의를 확보하지 못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PA 고용 확산의 표면적인 이유일 뿐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저수가와 수익만을 추구하는 병원들의 꼼수가 만들어낸 ‘기형적 현상’이란 점이 드러난다.

우선 저수가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보건복지부는 외과계열의 전공의 기피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9년 7월부터 흉부외과와 외과의 수가를 각각 100%, 30% 씩 인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과계열의 업무 난이도와 위험도를 감안할 때 적정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대표적인 흉부외과 수술인 승모판막 치환술의 경우 평균 6~7명의 의료진이 붙어 5~6시간의 수술을 해도 건강보험 급여비는 1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선천성 심기형의 일종인 '활로씨 사징증' 수술도 전문의 여러 명이 10시간 이상 수술을 해도 진단 및 수술비용만 계산하면 200~300만원 수준이다. .

반면 한 명의 의사가 20~30분 정도면 시행할 수 있는 라식 수술의 비급여 진료비는 150만원에 이른다. 쌍거풀 수술비 100~150만원과 비교해도 터무니없다. 이런 기형적 수가 구조가 병원들로 하여금 고난이도의 외과 수술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들은 저수가 구조를 이유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보존하려 한다. 인건비가 저렴한 전공의 인력을 활용하다가 지원기피 현상이 심화되자 급기야 PA를 활용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것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병원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PA 고용을 확대할수록 저수가 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고, 전공의 지원 기피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복지부가 PA 제도화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인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병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흉부외과 전문의는 총 942명에 달하지만 이중 400여명이 외과계열 수술이 거의 없는 병의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인력이 메스를 놓고 중소병의원에서 감기나 비만 등의 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형병원들이 외과계열의 전문의 인력 채용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우선적으로 수가 인상분을 전문의 인력 충원에 사용해야 한다. 저수가를 탓하며 인건비 절감을 핑계로 전공의와 PA 등 값싼 노동력에만 의존하려 한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난제다.

대형병원들이 병상을 무작정 확대해 놓고 값싼 전공의 인력과 PA에 의존하는 것은 의료자원 불균형과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복지부의 PA 제도화 추진 역시 우려스럽다. 당장의 인력 수급난을 모면하기 위해 장기적인 의료인력 수급 계획 없이 PA 제도화를 시행했다간 외과계열의 전문의 양성 자체가 힘들어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만, 미용, 성형 등의 진료과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 남고 수술하려고 흉부외과를 지원했지 개원하려고 지원했겠냐”는 흉부외과 개원의의 말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병원들이 단기적인 수익성에만 매몰돼 기형적 인력 수급 구조를 고착화시키려 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외과 의사들이 지금 메스를 내려놓고 자신들의 전문과목도 숨긴 채 감기환자를 보고 비만환자에게 약 처방을 하고 있다. 누가 외과 의사들의 메스를 빼앗아 갔나, 누가 사자의 심장을 쏘았나….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