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의 서바이벌 의료윤리>

■지난 달 사례-장애 가진 미숙아의 치료중단을 요구하는 부모

결혼 후 3년만에 어렵게 가진 아기를 6개월만에 조산한 부부의 아기가 다운 증후군으로  진단되었다. 심장에도 기형이 있어서 수술이 불가피하고, 지능도 정상보다 몹시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근근히 목숨을 유지하는 아기를 며칠간 바라보던 부부는 의사선생님께 치료중단과 퇴원을 요구하였다. 치료비도 그렇고 아이의 장래를 고려할 때 더 이상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퇴원하면 아이는 심장문제와 미숙아의 문제로 인하여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러한 경우 의사는 부부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는 일정기간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결국 아이의 양육에 관한 책임을 부모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친부모조차도 키울 자신이 없다면 의사가 부모의 요청을 거절할 권리는 없다고 봅니다. 생명존중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아이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그러한 아이를 키우는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입으로만 착한 척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불가능하고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기 어렵다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더 고통일지 모릅니다. 만일 제가 사례에 소개된 아기이고 제 견해를 말할 수 있다면,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 서울 명륜동 J씨 )

신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무게 사이에 부모나 의사 선생님이나 참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아이나 부모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당장은 아픔이 있겠지만, 장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일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마음 한 편이 꺼림직한 것은... 건강하고 잘난 아기들만 어른으로 성장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닐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 겉모양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스티븐호킹 박사처럼 겉으로는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장애인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가꾸어나가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분들이 그들의 장애 때문에 건강한 저나 여러분보다 훨씬 불행할 것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맹아원 교사 C선생님)

 

■긴 고민, 간략한 조언

제가 몸담고 있는 일터, 단국대병원에는 병원윤리위원회라는 귀한 조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결정들에 있어서 윤리적인 딜레마가 발생하면, 이를 병원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인사까지 포함하여 구성된 위원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조언을 해 주곤 합니다.

수년간 윤리위원회의 실무일을 당당하면서 가장 많이 접수된 사례가 바로 장애를 가진 신생아기들에 대한 부모의 치료포기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들 사례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나이가 어리다보니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과, 아이들의 상태가 심각하여 치료를 계속해도 더 이상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를 어떻게 해서든 정상아처럼 고쳐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부모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이와는 반대로 장애아를 출산한 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며, 출산 직후에 바로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하는 비정한 부모들도 있습니다.

지난 달 사례에서 다룬 것처럼 현대의 의료윤리 관행은 판단능력이 정상적이고 우울증이 없는 성인 환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원치 않으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치료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견해가 대세입니다. 사이비종교의 교리를 신봉하여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한 경우라면 죽어가는 환자라도 강제로 수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선행을 행하라는 선행의 원칙과 자율성 존중의 원칙 사이의 갈등은 자율성쪽이 조금은 우세한 형국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이 어린아이나 신생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대한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아이의 치료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에 이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모가 아이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장애아를 낳았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거나,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혹은 원래부터 원치 않는 아기였다는 이유 등등으로 쉽게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이의 치료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이의 상태가 어떠하냐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즉, 아이의 병이 최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장애는 남겠지만 치료가 가능한지, 장래에 아이의 삶의 질은 어떠할지 등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아이의 의학적 상태에 관해서는 담당 의사가 가장 잘 알겠지요. 그러면 담당의사가 치료여부를 결정해야 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의사가 부모가 치료를 포기한 아이의 진료비까지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애가 심한 아기에 대한 치료여부는 복지차원에서 국가적인 보호장치가 없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이비종교를 믿는 성인은 자신의 치료를 거부하고 순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들의 자녀까지 순교자로 만들 권한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달의 딜레마 사례- 우연한 검진 후 여중생의 임신 사실을 알게된 의사

15세 여학생이 엄마와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주된 증상은 식욕부진과 소화불량으로 학생의 엄마는 특목고 입학을 목표로 하는데 최근 성적부진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며 혈액검사와 내시경 등 검사를 한번 받고 싶다고 한다.

신체 진찰과 이런 저런 문진 후에 혈액검사를 실시하였고 다음 날 수면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고 귀가시켰다. 한 시간쯤 후 학생으로부터 진료실로 전화가 왔다. 남자친구가 있고 생리가 멈춘지 3개월째로 약국에서 임신반응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엄마가 알면 절대 안된다며.. 비밀리에 수술해 줄 수 있는 산부인과를 소개해 줄 수 있느냐며 울먹인다.

담당의사로서 학생의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을까?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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