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최종회] 4개월 걸친 워크숍 대장정 마무리…"의료공공성 강화, 국민적 공감대 형성 중요"

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계기로 이른바 '무상시리즈'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무상급식 도입이 속속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상의료의 경우 만만찮은 재원부담과 국내 의료공급체계 등을 따져볼 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가운데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이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정책 대안마련 워크숍을 시작했다. 양 단체는 올 2월까지 총 15회 연속으로 진행되는 이 워크숍을 통해 무상의료 도입의 전제조건인 '공공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 개편'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본지는 4개월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을 현장 동행하며 과연 국내 의료환경에서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상의료 도입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편집자주>

[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1] 김용익 교수 "300병상 이하 병원 공공매입 필요"

[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2] 갈 길 잃고 헤매는 1차의료…의료생협에 길을 묻다 

[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3] 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의 길을 묻다[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4] "돈 잘 버는 의사 선택하게 되는 지방의료원 현실"[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5] "국립대병원의 위상과 역할, 애매합니다"[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6]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은 없다?[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7] 중소병원, 공룡병원들 군비경쟁 속에서 길을 잃다[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8] "보훈병원. 보훈공단 그늘에서 독립해야"[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9] "산재환자는 죽어가고, 산재병원은 비어가고"[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10] "환자들을 가둬놓기만 하는 '뻐꾸기 둥지"[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11] 다시, 한국의료에서 사립대병원이란 무엇인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후원하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의료공급체계 개편과 혁신을 위한 연속 기획 워크숍’이 지난 14일 서울 도봉숲속마을 대회의실에서 16회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성장위주의 경제발전 전략 하에서 복지의 무풍지대였던 한국이 지난해 무상급식 시행에 이어 무상의료가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총선 대선 국면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무상의료’가 최대의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서 무상의료가 올바로 실현되려면 ‘공적재정확충대책’은 물론 지금의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꾸는 공공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의 혁신적 개편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보건노조는 국내 대다수 주요 병원을 포괄하고 있는 조직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의료기관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의료체계에 대한 주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한국 의료의 길을 찾고, 의료기관의 문제를 풀어 가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워크숍을 기획했다.

대장정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3일 국립중앙의료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사전 간담회였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용익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는 워크숍 기획팀과 발표자들이 함께 모여 전체 진행기조와 방향을 논의했다.

일주일 후인 11월 10일, 보건노조 회의실에서 본격적인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날 워크숍에서 김용익 교수는 ‘올바른 의료공급체계개편을 위한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전체 워크숍의 여는 발제를 통해 종별 의료기관의 기형적 구조와 그에 따른 시설 및 인력의 불균형을 지적했다.김 교수는 “보건의료공급체계 개편 방안으로 가장 먼저 의료자원의 적정화와 효율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과잉 민간병상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며, 중소형 중심의 병원체계를 개편해 동네의원과 병원의 기능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보건노조는 의료생협,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대학병원 등 종별 의료기관과 국립중앙의료원, 보훈병원, 산재병원, 적십자 혈액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을 직접 방문하며 현지 실사와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각 워크숍마다 해당 의료기관이 처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와 함께 대안마련을 위한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4개월간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은 관련 분야 전문가 25명이 기조 발제를 하고, 90여명의 교수, 현장 전문가, 노사 대표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토론을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특히 이번 기획 워크숍은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최초로 민간기관 중심의 의료현실, 공공의료 부족, 의료 양극화 현상, 수도권 및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 의료인력 부족, 요양기관 간의 격차 심화 등 의료공급체계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익 교수 "의료 공공성 강화에 대한 국민적 담론 형성 중요"지난 14일에는 장장 4개월여에 걸치 대장정을 마무리는 16차 워크숍이 열렸다. 마지막 워크숍의 첫 발제는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용익 교수가 맡았다.

이날 워크숍에서 김용익 교수(사진)는 현재 한국 의료의 현황과 차기 정부기간 동안 한국 의료가 가야할 개혁방안과 한국 의료의 새로운 비전을 위한 2012년의 과제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00년 이후 민주정부 10년을 돌아볼 때 건강보험 통합 일원화 및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중증질환 본인부담률 인하 등의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그러나 여전히 미흡한 보장성으로 인해 여전히 의료비는 가계 파탄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 사각지대는 더욱 확대됐다”며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세대가 전체 지역가입자의 20%에 해당하는 153만 세대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치료 중심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 의료체계는 병이 난 이후에 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체계이며, 이러한 체계로는 고령화와 만성질환 시대의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불가능 할 것”이라며 "병의원은 과잉이지만 수익성이 없는 건강증진이나 질병관리 서비스 제공기관은 절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의 경제’에 미달하는 병원이 전체 입원 의료기관의 97.7%를 차지하는 현실에 대해 대다수 의료기관이 구조적 비효율을 내재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간의 규모와 기능이 중복돼 의료기관 간 기능 정립의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 민간병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소형 중심의 병원체계를 개편해 동네의원과 병원의 기능을 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300병상 미만의 병원은 정부의 공공 매입을 통해 스스로 시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300병상 이상의 2차 병원과 동네의원에 대해서는 수가를 구분해 외래 및 입원의 기능을 분화해야 한다"며 "300병상 미만의 신규병원은 신설을 금지하고 300병상 이상 병원은 지역 병상총량제를 적용하면 신규 병상의 증가를 억제하고 기존 과잉 병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적 담론 형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올해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실행할 정치적 주체를 확보하는 동시에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그간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당위성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실행 가능여부에 대한 의문이었던 만큼 국민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의 공공적 개편은 한국 의료을 본질을 바꾸는 것”이라며 “민주 진보세력의 정치적 집권은 공공성 강화의 완결이 아니라 출발”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적 공감대 참여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민적 참여의 필요성과 함께 인력확충 및 의료기관의 구조조정 등 구체적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임종한 한국의료생협연대 회장 겸 인하대 의대 교수(사진)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변화만으로 의료에 대한 개혁은 간단치 않을 것”이라며 “민간병원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봤을 때 의료자본의 이윤을 증가하려는 시도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무기력하게 하려는 시도를 봐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시장에서 기업의 지배력이 확대되는 양상 속에서 국가의 일부 기능조차도 시장에 통합되어 가는 추세인 만큼 시장을 바꾸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역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복잡한 정책을 나열하기 보다는 사회변화를 위한 시민들의 동의가 우선 과제”라며 “정부의 자본투여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감시·견제 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투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의료개혁을 위해 지역사회 내에서 사회개혁에 대한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그 혜택이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시민에게 의료서비스로 돌아갈 때, 이것이 의료개혁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경험했을 때 의료개혁에 대한 의지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버넌스 구축과 인력부족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사진)는 “결국은 얼마나 국민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냐가 공공의료 강화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핵심적 키워드”라며 “그동안 논의를 통해 목표했던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과제로 인식하고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병원에 있어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 부분은 인력의 확보”라며 “의료현장에서 인력확보에 대한 전향적 정책도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간의 역할 정립과 함께 실현 가능한 당면과제부터 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의료기관 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의료기관 간의 서비스 질적 격차에 대해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격차는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국민건강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의료서비스 질 높이는 것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의료기관들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용익 교수의 주장처럼 병원의 기준은 300병상으로 하고 의원은 별도 병상없이 동네의원으로서 역할하게 하는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해주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것이 가능해 질 때 의료시장도 분할이 되고 의료기관의 단계별 기능 정립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립중앙의료원 문정주 공공보건의료센터팀장(사진)은 의료기관의 구조조정과 함께 민간병원 지배구조 상의 공공성 인식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팀장은 “보건의료공급체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지방의료원 같은 중소 종합병원들의 변화가 제일 클 것”이라며 “규모의 경제에 미달하는 병원들이 없어지면 300병상 이상의 병원들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한 민간병원 참여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문 팀장은 “민간의료기관이 의료급여 환자에게 너그럽다든지 지역을 위해 이벤트성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공공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며 “민간병원이 본질적으로 지배구조 상 운영체계의 공공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공공의료기관이 양질의 적정진료, 충실한 지역의료, 영리추구 의료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를 위해 문 팀장은 ‘공공의료 의사·간호사 공직’을 제안했다.

현재 국립암센터나 국립중앙의료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병상당 전문의 인력 규모는 전체 종합병원의 전문의 평균에 비해 1.4~2.6배에 달한다. 반면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취약지에 위치한 국공립병원은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리며 공중보건의사 제도에 의지해 의사 규모를 유지해왔다.

특히 국립 정신병원․결핵병원은 전문의 중 40~60%를, 지방의료원은 전체 전문의의 약 25%, 심지어 취약지역 소재 지방의료원의 경우는 전문의의 60%~70%를 공보의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 팀장은 “지방의료원에서 공보의가 아닌 봉직 전문의라 하여도 대부분 계약직 상태에 있어 지위가 낮으며 의료서비스 질 강화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을 여지가 없다”며 “공공의료 의사 확보에 새로운 방안이 필요함에 따라 공공의료에 몸담을 의사 공직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팀장의 토론을 마지막으로 4개월에 걸친 ‘의료공급체계 개편과 혁신을 위한 연속 기획 워크숍’이 막을 내렸다.

워크숍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경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정백근 교수는 “보건노조의 기획 워크숍은 의료공급체계의 개편과 관련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특성을 가진 기관들의 혁신방안을 수 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의료 보장성 확충이 그 어느 때보다 획기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에 걸맞는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대안을 미리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세적 차원에서도 매우 적절한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인천평화의료생협 오선근 교육위원장 역시 “워크숍은 무상의료를 향한 디딤돌은 놓는데 의미있는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보건의료서비스를 생산하는 보건의료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인 환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진행했다는데 더욱더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노조는 이후 워크숍 결과를 환자단체연합회,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의 공동요구로 집대성해 주요 정당과 후보에게 전달하고, 차기 국회와 정부에서 적극 채택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이며 일반 대중용 교양책자로 제작해 올바른 의료공급체계 혁신이라는 핵심의제를 사회담론화 해나갈 방침이다.

이날 최종 워크숍에서 보건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그동안 진행된 워크숍 결과를 모아 2012년 총선과 대선 정책 창이 열리는 시점에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 혁신, 공공의료, 지역의료 강화’와 ‘각급 의료기관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정치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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