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의료법은 사실상 의료인에게 진료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의료인이 치료과정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토록 하는 법원의 판례가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법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이와 배치되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건보법은 의사의 최선의 진료행위 여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요양급여기준에 맞게 진료 했는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요양급여기준은 의사의 진료행위가 얼마나 경제적이고 비용효과적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급여기준에서 벗어나 치료를 했을 경우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선 진료현장의 의사들은 환자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임의비급여 문제는 이러한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사실 '임의비급여'란 용어는 명확하게 그 의미를 정의내리기조차 모호하다. 대개 급여기준을 벗어나서 의료인이 자의적으로 비급여로 진료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임의비급여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급여로 적용되는 기준을 초과하거나 급여·비급여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의학적기준에 근거한 불가피한 비급여를 뜻하는 '의학적 임의비급여'이다.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이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심사나 삭감을 피하기 위해 비급여로 처리하거나 급여기준을 무시하고 비급여로 처리하는 '불법 임의비급여'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의학적 임의비급여다. 급여기준을 벗어나거나 아예 급여.비급여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이미 의학적으로 그 효용성이 확인된 치료행위에 대해서도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의 치료행위를 하는 것조차 급여기준의 틀에서, 정확히 표현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 경제성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사의 자주성 및 직업적 자유에 관한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골수이식을 받고 면역기능이 완저히 떨어진 백혈병 환자가 갑자기 고열이 나는데 어느 의사가 느긋하게 균배양 검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급여기준에 따라 저용량의 항생제를 투여할까. 그럴 경우 아마 거의 모든 의사가 급여기준 따위 아랑곳없이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로 인해 의사는 나중에 불법 임의비급여라는 멍에를 뒤집어 쓰게 된다. 이 때문에 환자를 살릴 것인가, 급여기준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의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임의비급여 문제가 결국 대법원의 심판대에 올라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은 오는 16일 여의도성모병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 대한 공개변론을 연다고 한다. 여의도성모병원은 2006년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들에게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약품을 투여하고 본인부담금을 받은 것이 의료비 부당징수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110억원대의 과징금 부과와 부당이득 징수 처분을 받자 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의 판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연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앞서 고등법원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면 이는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수진자의 동의 아래 요양급여기준을 넘는 비용이나 보수를 추가로 받는 경우까지 금지시킬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인의 전문적 직업수행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임의비급여가 허용되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만 급증하고, 의료행위의 검증체계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복지부의 이러한 판단은 전적으로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앞에 두고 진료비 수익 더 올리자고 불법 임의비급여를 생각하는 의료인이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불거진 임의비급여 문제는 불명확한 급여기준과 건강보험재정의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모든 임의비급여를 불법 부당청구로 규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제도의 잘못을 의료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이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복지부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복지부는 먼저 제도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의지와 솔직함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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