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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도쿄에서 꼭 누려야 할 눈의 즐거움!

도쿄 미술관 산책 / 장윤선 지음 / 시공아트 펴냄


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가끔 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일정을 학회 기간에 맞추기 때문에 빠듯하기는 합니다만,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 생긴 자투리 시간, 혹은 관심있는 주제가 빠져있는 시간에 방문지에서 놓치면 아쉬울만한 곳을 골라보기 마련입니다. 제 경우 역사적 유물, 미술관, 박물관 등은 꼭 찾아보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예술품에 대한 허영심을 채우거나 혹은 그곳까지 가서 꼭 보아야 할 구경거리를 놓쳤느냐는 핀잔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릅니다. 보통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리 챙기기도 합니다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현지에서 수소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인 이번 동경방문길에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을 미리 읽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자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꼭 누려야 할 눈의 즐거움!”이라는 홍보카피는 분명 저보다는 한 수 높은 미술품감상의 눈을 가진 여행객에게나 어울릴 법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저 같은 얼충이 미술관 방문객도 좋은 공부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홍보카피를 조금 더 인용해보면, “아침에 비행기를 타면 점심에는 구경할 수 있는 이웃 도시 도쿄, 그곳의 박물관, 미술관, 문화공간에서 유구한 전통의 멋과 최첨단 예술 트렌드를 함께 만끽하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음 날 학회일정과 비행기편을 맞추다 보니 한나절의 시간여유가 생긴 제 경우를 두고 적은 글 같습니다.

<도쿄 미술관 산책>은 장윤선님의 독특한 기획의도가 담겨있습니다. 흔히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장윤선님은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챙겨 읽을거리로 만들다보니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따라 감상대상을 넓혀보는 즐거움 또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립서양미술관을 입장하면서 만나는 2층에 이르는 경사로라던가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는 계단과 그 아래 휴식공간, 조명시설 등은 저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가 미술관을 설계했다던가 상설전의 작품들이 주식회사 가와사키의 초대사장 마쓰카타 고지로의 컬렉션으로 구성된다는 것, 마쓰카타가 이들 작품을 손에 넣게 된 과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동경에 산재한 문화공간을 우에노, 록폰기, 아오야마 그리고 그 외 지역으로 크게 나누어 정리한 책에서 이번 방문길에는 우에노지역을 챙겨보기로 한 것입니다. 일본어라고는 필요한 단어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영어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던 일본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변하고 있는 듯해서, 세 번의 방문길에 전철타기를 어깨너머로 배운 탓인지 홀로 나서는 구경길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작정 숙소를 나서 전철을 타고 우에노역에 도착했습니다. 출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서 우에노공원에 들어서니 공원 안내도가 반깁니다. 코스를 계산해서 전철역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도쿄예술대학 미술관부터 시작해서 도쿄 국립박물관을 거쳐 국립서양미술관까지 보기로 하였습니다. 예술대학 미술관으로 가다보니 동경도 미술관은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아예 폐관하고 있어 아쉬웠습니다.도쿄예술대학의 미술관에서는 마침 졸업생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작품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내부에 설치된 회화작품과 설치예술품의 경우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인의 설명이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예술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 탓일까요? 심지어는 미술관의 독특한 모습의 나선형 계단이나, 로뎅의 <청동시대>가 정원에 설치된 예술대학 아트플라자에서 팔고 있는 공예품의 경우도 사진촬영이 안된다는 직원의 굳은 표정에서 ‘너무한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표시해둔 촬영이 금지된 전시물을 제외하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은 촬영이 가능한 국립박물관과 서양미술관의 경우와 비교된다고 하겠습니다.

국립박물관은 일본의 민속유물들을 볼 수 있고, 연결되는 헤이세이관에서는 일본에서 출토되었다는 석기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의 구석기유물이라는 표지에 ‘정말?’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시물 가운데 유독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곳은 꽤 넓은 공간을 내어 전시된 도검류들이었습니다. 날카롭게 별러진 일본도가 분해된 채로 혹은 칼집에 넣어진 채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방에서는 공연히 서늘한 느낌에 등골에서 한기가 흘러내리는 느낌이어서 갑옷들이 전시된 곳에서 받은 충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문화에서 ‘칼’이 차지하는 부분이 여전히 작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효케이관과 동양관은 보수 등을 이유로 휴관 중이었던 탓에 아픈 다리와 시간에 쫓겨 서양미술관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에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호류우지 국보관에서는 주로 절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으로부터 부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물보다는 건물의 중정에 해당하는 공간에 설치된 널따랗고 얕은 연못(?)을 통로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구조가 신기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일본의 민속화가 우리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불상들은 우리네 박물관에서 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설마 이 유물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들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장품에 대하여 시시콜콜한 설명을 생략한 것은 미술품에 대한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배려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만난 로댕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하겠습니다. 제 기억에 로댕의 조각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미국 동부에 있는 로댕미술관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생각하는 사람>, <지옥문> 등을 구경하고 뿌듯한 마음에서 슬라이드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귀국한 다음 어느 학술모임에서 자랑스럽게(?) 이 작품을 보았다고 소개했는데, 다른 장소에서 같은 작품을 감상했다는 분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조각가가 같은 작품을 여럿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로댕의 조각작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쓰카타 컬렉션을 보면서는 시카고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적의 느낌, 즉 예술적 허영심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쿠르베의 <파도>는 금방 액자에서 넘쳐 마루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고, <덫에 걸린 여우>를 보면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고통받고 있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캠페인에 참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친숙한 모네의 <수련>, 피카소의 <남과 여> 루벤스의 <잠자는 두 어린이> 등등은 한나절에 돌아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르세미술관은 아직 방문하지 못했습니다만, 색조의 대비가 뚜렷하고 선이 단순한 중세기독교예술작품으로부터 근세 인상파화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소장미술품들이 시카고미술관이나 필라델피아미술관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고 년 전에 방문한 부다페스트 미술관보다는 풍부하지 않나 싶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여행길에 낸 짬이라서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예대에서 구로다 세이키 기념관을 놓치고, 우에노 지역만 하더라도 국제어린이 도서관(공원 안내도에서 보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동경미술관, 옛 이와사키 저택 정원 등은 찾아가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롯폰기, 아오야마는 물론 기타지역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합니다. 그러니 다음 번 방문길에서도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이 함께 할 것입니다.

저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이 일본 문화를 대변하는 유일한 곳이라 강변할 생각은 없다고 하였지만, 역사적 유물과 예술, 문화시설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큰 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까이 있어 방문기회가 많은 일본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서 <도쿄 미술관 산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는 말씀과 함께 소개드립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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