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병원 내부 촬영을 어떻게 했냐고 질문했다. 답은, 솔직히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영화 <식코>를 보라. 병원 내부 촬영은 많지 않다. 물론 그 영화는 민영보험회사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였기에 굳이 병원까지 카메라가 들어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얀정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촬영하면서 훨씬 제작자로서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 바로 초상권, 그 자체였다. 비단 인터뷰이들의 얼굴뿐만 아니라, 지나치는 보행자, 우연히 카메라에 담긴 커피숍의 뒷사람 등등 실상 초상권의 개념을 들이밀면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하나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촬영 당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영화 개봉이 확정되고 초상권 동의서에 싸인 받으러 다닐 때였다. 그 전에 공동체 상영이야, 언더 더 테이블로 말 그래도 “우리끼리” 동호회처럼 보는 방식이었던 반면에 상영 규모가 어찌됐든 개봉이라는 것 자체에는 사회에 공식화시키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과 TV, 신문지면 상으로 어느 수준까지 인터뷰이들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설득하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특히 힘겹게 살아가시는 독거노인 분들이나 어르신들의 경우 의외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다.
여러 번 밝힌 적이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살아 있는 현실의 사람을 차용해 만드는 기록물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제약을 지니고 있다. 사실이기에 파워가 있고, 진실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반면, 사실이기에 그 당사자들에게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작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작은 돈으로 진솔한 기록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영상 세대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널린 카메라들 중 하나를 선택해 촬영 버튼을 누르는 그 용이함에 비해 한 사람을 널리 공포하는 공개 과정은 정말 난해하다.
누군가 열정 하나로 그런 작업을 시작한다면, 미리미리 초상권을 고려해서 촬영 전에 허락을 받아놓길 바란다. 카메라는 많고, 기록도 용이하지만, 그 영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 용어로서의 초상권이 아니라, 한 인간의 권리로서 초상권을 보장해주는 흐름은 누가 뭐래도 사회적 진보다. 그로 인해, 점차 다큐 감독들의 소재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아프리카, 아마존, 제 3세계 난민 앞에 초상권 개념 없이 들이미는 카메라들은 아마 당분간, 별 문제 없이 기록물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 크기만큼 큰 그들의 위력은 아직 원주민들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해 주고 싶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