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밀레니엄 의료혁명'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의약분업 제도가 시행된지 12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의약분업의 애초 취지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질 만큼 그 의미는 퇴색했고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논란이 분분하다.

의약분업 제도시행 12년 동안 의료계와 정부는 의약분업제도에 대한 평가에 있어 '전면 재검토'와 '보완발전'이라는 동상이몽 하에서 지금까지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약분업 제도가 항생제 오․남용을 줄여 국민건강을 향상시켜 미완의 의료시스템이나마 개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의원급 의료기관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처방률이 평가 초기인 2002년 73.57%에서 평가 결과 공개이후 56.83%로 크게 감소한 후 2009년 54.06%, 2010년 52.69%로 전체적으로 감소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심평원의 발표가 의약분업 제도 도입을 통해 나타난 효과로 제시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전인수식 평가라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의약분업 제도 시행 이후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 의약품 처방 품목수와 항생제 처방률 등이 더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의약품 처방 품목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처방건당 의약품목 수는 대체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의약분업 적용지역(-3.58%)보다 의약분업 예외지역(-13.95%)의 감소율이 더 높게 조사됐으며, 항생제 처방율 또한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 증감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항생제 처방률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의약분업 제도 시행 때문이 아니라 2002년 급성상기도감염의항생제처방률에 대한 약제급여적정성평가를 시작하고 2006년 결과를 공개한 것과 의료기술의 발전과 항생제 부작용에 대한 대국민 홍보, 인터넷 등 정보의 유통을 통한 소비자의 자발적인 감소 욕구 등의 요인에 의해 감소추세가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의약분업은 제도시행에 따른 준비 미흡으로 인한 국민불편과 약제비 증가, 건강보험재정 파탄위기 등을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제도임이 분명한 것 같다.

정부는 의약분업 시행 당시 과잉처방을 막기 위해 처방과 조제를 분리하고, 의약품의 적정사용을 통해 약제비를 절감시키겠다는 의도를 내세우며 의약분업 제도시행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00년 초반 약 4조원으로 건강보험 재정 전체 지출의 약 25%를 차지했지만, 2010년에는 총 진료비 43조7,000억원의 29.3%를 차지했다.이는 OECD 평균 비중인 14.3%의 약 두 배가 넘는 수치로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2005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통해 약제비 비중을 24%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계획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라는 사회적 변화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의약품 사용량이 증가하고 일부 고가약 처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의약분업 제도 시행으로 인해 약제비 감소가 이뤄졌다는 징표를 찾기가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시행 전인 1999년 의약분업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더 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었으나 200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토대로 연간 1조5천억원 가량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꾼 바 있다.

실제로 의약분업 제도가 시행된 첫해인 2000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을 살펴보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면서 1조9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2001년에는 1조8천19억원, 2002년에는 2조5천716억원 등의 누적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급여 역시 1999년 7조8천406억원에서 2000년 9조321억원, 2001년 13조2천447억원 등으로 의약분업 제도 시행 직후 급증세를 보였다.

의약분업제도 시행 이후 5년간 19조7천500억원 가량이 건강보험재정에서 추가로 빠져나갔다는 분석결과가 나오기도 했는데 건강보험재정은 직장 및 지역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인 만큼 결국 국민 부담만 크게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2년간 국민의 불편을 감수하고 시행된 의약분업이 실제로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고 의약품 사용량을 감소시킨다는 본래의 목적과 취지를 달성했는지 추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의약분업 제도 시행 이전보다 몇 배로 늘어난 원외처방약품비와 이전에는 없었던 약국 조제료 지출을 줄이기만 하더라도 노령화로 인해 증가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건전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직된 정책을 추스르고 국민 앞에 진실을 이야기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리베이트 쌍벌제' 역시 리베이트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낮은 의료수가와 정부의 잘못된 약가산정제도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외시한 채, 모든 책임을 의사들에게 전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또한 잘못된 의약분업 제도로 인해 발생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6년간 급여비 증가율은 7.4%(2조 5055억원)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급여비 증가율이 가장 낮았던 탓에 2011년말 건강보험 재정이 6008억원의 당기흑자를 기록하고 적립금은 2010년말 1조3000여억원에서 1조5600억원으로 늘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급여비 증가율이 낮은 이유로 고혈압치료제 기등재약 목록정비와 치료재료 가격조정, 영상검사료 조정, 대형병원 약제비 본인부담조정 등 지출억제책을 펼친 결과 3504억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결과가 도출되기 까지 개원가는 물론 의료계는 전반적인 불황을 맞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의료계를 옥죄는 의료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를 꾀하려할 것인가?

건강보험 재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급격한 요양급여비용 지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보장성 확대 정책, 부실한 국고 지원 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미봉책에 불과한 의료정책으로 의료계의 저항뿐 아니라 언제든지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지출 증가요인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불안정한 건강보험 재정 여건으로 인해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순간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의약분업 제도가 국민의 불편만 가중시키는 제도라는 결과가 도출된다면 이를 보완할 새로운 제도로 변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의약분업 제도 시행 이후 약제비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악화, 약사들의 불법 임의ㆍ대체조제 성행 등 부작용이 횡횡하고 있는 만큼 국민이 약의 조제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선택분업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즉, 병·의원에서 진료와 약 조제를 할 것인지, 현재와 같이 진료는 병·의원에서 조제는 약국에서 할 것인지를 국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약분업 제도 실시 이후 각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상당수가 의약분업 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렇듯 국민 상당수가 잘못된 제도라고 생각하는 기형적인 제도를 계속 끌고 가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72조에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해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약분업 제도 역시 국민건강 안위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제도의 지속여부에 대한 찬반을 물을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무릇 모든 제도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만 최대의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의료비용의 효율화로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를 이루고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은 국민선택분업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우리나라 의료를 회생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시금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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