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특히 건보공단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듯한  ‘자기모순’(自己矛盾)의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건보공단의 이런 행보는 사실 지난해 11월 김종대 신임 이사장이 임명되면서 예고된 일이기도 하다. 그는 1989년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공단을 통합하는 ‘의료보험법’(현행 건강보험법)에 반대했던 전력이 있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 도입을 앞두고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지역의료보험조합의 통합을 추진할 당시에도 이를 반대하다 복지부에서 직권면직(1999년) 됐다.

이후에도 줄곧 통합공단 해체를 공공연하게 주장해 ‘건보 해체론자’란 평가를 받아왔다. 당연히 그런 인물이 ‘통합공단’의 이사장에 임명됐으니 자기모순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지난 26일 열린 건보공단 정책세미나는 어쩌면 자기모순의 결정판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연세대 이규식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오류투성이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건강보험 통합의 목적이 하나도 달성되지 못했으며,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에 실패해 건강보험이 위헌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개혁 방안으로 가입자에게 공단 지사 선택권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조합주의로 회귀하자’는 주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참 해괴한 일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 건강보험 재정통합에 대한 위헌소송이 제기된 상황에서, 그것도 최종 선고만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공단이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는 것이 이해불가다.

 

게다가 이규식 교수는 건보통합 위헌소송을 제기한 청구인 측의 참고인으로 참석해 재정통합의 문제점을 비판한 인물이 아닌가. 

더욱 가관인 것은 이 교수의 발표 내용에 대해 김종대 이사장이 맞장구를 쳤다는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 이사장은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미래를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왔다”며 “이 교수의 오늘 발표 내용을 공단 쇄신위원회의 활동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단다.

물론 건강보험 재정통합 이후 직장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체계 이원화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연대 원리에 기반한 소득재분배와 보장성 확대 등 재정통합 이후 발생한 순기능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본다.

지금처럼 지역 간․계층 간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과거 조합주의로 회귀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지 않은가. 단적으로 고령화 속도는 더 빠르고 경제구조가 취약한 지역의 의료조합은 대체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을 충당할 수 있단 말인가.

각설하고, 통합공단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는 주장에 맞장구를 치는 공단 수장이 과연 어떻게 ‘보험자 기능 정상화’를 추구하고,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의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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