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재정통합에 대한 위헌소송이 헌법재판소의 최종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가입자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선택권을 부여하는 조합주의 방식으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26일 건강보험공단 주최로 열린 '건강보장정책 세미나'에서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제기했다. 

이날 세미나는 건강보장 정책 현안 과제를 보험자 관점에서 조명하고, 실천적인 정책 개선방안을 도출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규식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소송의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서 재정통합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등 대표적인 통합 반대론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건강보험 통합은 오류투성이 정책이었다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건강보험 통합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실증적 차원이 아닌 이념적 차원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통합법은 오죽하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청이 제소돼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건강보험 통합의 목적인 ▲소득재분배 ▲국고지원 최소화 ▲보험급여(보장성)의 확대 ▲지역가입자 보험료 인하 ▲관리운영의 효율화 중에서 어느 하나 달성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지출 대비 국고지원 비중 추이를 보면 통합 전(1998년 12.2%)보다 통합 이후(2001년 18.6%, 2010년 14.8%) 국고지원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은 보험급여 확대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이뤄진 보장성 확대는 재정통합과 관련이 없다”며 “오직 보험료 인상을 통해 실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통합 이후 관리운영비 절감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교수가 보험자 관리운영비 추이를 분석한 결과 통합 전 보다 통합 이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공단 관리운영비가 1조원(복지부 내부 자료) 가까이 돼는 데 공단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지 의구심이 든다”고 쏘아붙였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에 실패해 건강보험이 위헌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이 교수는 “부과체계가 종합과세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삼원화돼 있다. 이에 한해 7,000만건에 달하는 민원이 공단에 쏟아지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은 건강보험 재정은 통합했는데 재원조달체계는 이원화돼 있는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의약분업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 교수는 의약분업의 총 10가지 목표(의약품 오남용 근절, 약제비 절감, 제약산업 유통구조 발전 등)가 있었으나 임의조제 근절만 대체로 달성했고, 나머지는 실패했다고 결론내렸다.

이 교수는 “항생제 사용률 감소는 심평원의 약제성 평가에 기인한 것이지 의약분업의 효과로 볼 수 없다”며 “오히려 항생제 등 전체 약 사용량은 대폭 증가하고 그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약분업 이후 이뤄진 처방전 2매 발행은 처방전 카피 등 부작용만 키웠지 환자의 알 권리 신장엔 기여하지 못했다”며 “또한 복약지도는 위반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고 정부 관리가 부실해 실패한 정책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원래 목적 달성에 실패하면서 건보 재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으로 인한 적자 누계액은 약 23조원~5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건강보험 대개혁이 필요하고, 그 대안으로 ▲보험료 부과체계 개혁 ▲보험급여체계 개혁 ▲공단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 ▲국민에게 공단 지사 선택권 부여 ▲건강관리 증진 중심의 진료 패러다임 전환 등을 제시했다. 

그는 “보험 급여범위는 확대하면서 혼합진료는 배제하는 방향으로 보험급여체계를 바꾸고, 요양기관 계약제를 도입해 부실 의료기관의 관리 기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공단의 기능에 중앙기금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과 지역본부를 패쇄하고 지사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공단은 보험료 징수 기능에서 탈피해 건강보험의 청구, 심사 등 분할돼 있는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며 “공단 지사를 보험재정(급여)관리자로서의 기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교수의 발표가 끝난 후 김종대 이사장<왼쪽 사진>은 얼마 전 발족한 공단 쇄신위원회의 건강보험 개혁 방향과 이 교수의 주장이 맥을 같이한다고 거들었다.

김 이사장은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미래를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왔다”며 “이 교수의 오늘 발표 내용을 공단 쇄신위 활동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공단 쇄신위에서는 부가체계 단일화와 예방 및 건강검진 증진 체계 전환, 보험급여관리 기능 강화 등을 보험자 기능 정상화 과제로 규정했다”며 “건강보험 통합 평가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건강보험 개혁 과정에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