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단국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핵심적인 임상기술(clinical skill)이다” 언뜻 이해가지 않는 말이지만 최근 의료계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저수가 체제 하에서 중소병원과 개원가는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고 리베이트 쌍벌제 통과,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은 의사의 이미지를 흐려 놓았다.  이 때문에 의사들에게 환자는 물론 대중과의 소통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6년 창립된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가 지향하는 방향도 바로 의료인의 의사소통 능력 제고다. 올해부터 대한의학회 정식 회원학회로 등록된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박일환 회장을 통해 향후 학회의 비전과 과제를 들어봤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가 올해부터 대한의학회 정식 학회로 등록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창립 5년만에야 대한의학회 산하 단체로 인정받게 됐다. 이제 우리나라도 의료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대한의학회 세부 단체 중에서 의료인문학 분야는 의료윤리학회나 의학교육학회 등 2~3개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는 의료인문학 유관 학회 중 인문학적인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학회다. 최근 한국 의료계가 겪고 있는 사회와의 소통의 부재, 장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이를 찾고 논의하는 과정에 의료커뮤니케이션 연구가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쪽에선 의료커뮤니케이션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에 힘써왔다. 학회 역사도 깊고, 학술 활동도 왕성하다. 미국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AACH)와 유럽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EACH)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학술지 ‘Patient Education and Counseling’은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의 학술 논문을 거의 매달 쏟아낸다.  

우리 학회도 학술지 수준을 높여 현재 학술진흥재단 등재 후보지에서 등재지로 격상시키는 게 목표다. 환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한 의사는 물론 간호사 등 회원 직역군을 다양화할 예정이다. 국제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아시아 커뮤니케이션학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주력할 방침이다."

-학회가 추구하는 환자중심적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의학지식과 술기 중심의 교육을 받고 나온 의사들이 환자를 얼마나 배려할 수 있을까. 의사로서 권위와 자존심을 한풀 죽이고 환자를 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 중심적 커뮤니케이션이란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질병체험을 온전히 공유하고, 나아가 환자에게 치료방법 등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스킬을 의미한다."  

-라뽀를 유지하면서 치료에도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다면.

"3년전부터 우리 학회가 한국연구재단과 진행하고 있는 ‘질병체험 내러티브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다학제적 연구’도 하나의 대안이다. 지금은 당뇨환자의 질병체험을 통해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당뇨환자들은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개인의 특성에 맞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의료인들이 제공해주길 희망한다. 또한 당뇨환자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줬으면 하고 바란다. 어떤 환자는 의사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 다 물을 수 있도록 편안한 대화를 원한다.

위의 사례처럼 당뇨환자들이 진료 시 의료인에게 품었던 불만이나 원하는 바는 물론 질환의 발견이나 부작용 등의 질병체험을 데이터베이스화(영상 및 녹음)해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한가지 질환에 약 50명 정도의 케이스가 있고, 현재는 당뇨병만 진행됐다. 앞으로 만성질환부터 점차 대상 질환 수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올해 국제심포지엄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국제 심포지엄은 지난 2008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됐다. 당시에는 참가국이 적었지만 올해 추계학회에는 좀 더 많은 국가에서 참여토록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 올해가 아니더라도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 다만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의 성격이 의학, 간호학,  인문학, 언론홍보학, 치의학 등 다학제적인 모임이 강해 국제 심포지엄이 열리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역점 사업은.

"다른 학술단체들을 위해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연구와 교육을 위한 표준적 지침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 의사국시 등에 의료커뮤니케이션 분야가 적용돼 의료인의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기여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다. 의사와 다른 직역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교육사업 등에도 학회 활동을 넓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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