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의료정책 추진 과정을 보고 있으면 ‘난임(難姙)’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 이유는 이렇다. 복지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보건의료 정책 가운데 상당수가 관련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용도 폐기되거나 추진된 후에도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제대로 된 정책 효과를 낳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제대로 된 정책이라 하면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보다 발전된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복지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경증환자 약값 본인부담 차등제를 들 수 있다.

복지부는 작년 10월부터 경증질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완화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겠다는 목표 아래 약값 본인부담 차등제를 시행했다. 제도 시행 전에 대한당뇨병학회 등은 “약국 본인부담률 차등제는 약값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되는 저소득층 환자들을 더 큰 합병증 위험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 제도가 시행에 들어가니 당뇨합병증 환자와 천식 환자 등 상급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한 환자들의 비용 부담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도 불투명해 보인다.

최근에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앞두고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 책임의 절반을 의사에게 지우는 규정을 놓고 산부인과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탓이다.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에 따른 재정 소요액은 약 100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복지부는 추계하고 있다. 이 중에서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연간 50억원 정도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과 관련된 무과실 의료사고(질병) 보상제도는 사회안전망"이라며 "사회안전망의 확충 비용을 산부인과 의사들이 부담하라는 정부의 의도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의료분쟁제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복지부가 현행대로 의료분쟁조정법을 강행하면 분만거부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공의들조차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분만의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다른 나라에서도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국가가 100% 보상해주는 경우가 없다’는 둥,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둥 하며 의료분쟁조정법을 현행대로 강행할 태세다. 복지부는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면서 전액 국가에서 재원을 부담하는 일본의 사례는 못 본 척 한다. 무과실 분만사고에 따른 보상재원 가운데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해야 하는 50%, 즉 50여억원의 추가 예산을 확보하기가 버겁다는 복지부의 변명도 한심하다. 

올해 확정된 복지부 예산을 보면 영유아 보육료로 작년보다 무려 4,500억원 이상 늘어난 2조3,913억원을 확정했다. 무과실 분만사고시 국가가 100% 보상하는데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 50억원을 여기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수행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한방체험인프라 조성' 사업 예산으로 25억원이나 신규 편성한 복지부가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재원으로 수십억원을 추가 확보할 수 없다니…. 이 와중에 복지부는 최근 ‘2011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안심하고 출산․양육할 수 있는 사회 환경과 행복한 노후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낮은 분만수가와 의료분쟁 우려로 분만을 포기한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적지 않다. 작년 3월 기준으로 산부인과 진료과목이 설치된 3604개소 요양기관 중 분만실을 둔 곳은 1,045개뿐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애낳을 분만병원을 찾아 산모가 원정출산을 다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재원 논란을 보면서 저출산을 국가위기로 규정하고 총력을 기울여 극복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의심스럽다.

[일본의 산부인과 무과실 보상제도는] 일본은 연간 의료사고 소송 중 30% 이상이 산부인과 관련 소송으로 집계될 정도로 잦은 의료사고 소송이 산부인과 병원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산부인과 진료의 세분화가 이뤄지면서 의료분쟁 가능성이 높은 분만을 포기하고 불임, 일반 부인과, 부인과 종양 등의 분야로 진출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는 2009년 1월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분만과정의 문제로 뇌성마비아 출산 시 일정 금액(3000만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보상 재원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민간보험사에 내는 보험료(약 3만엔)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부담하지만 실제 보험료는 정부와 지자체가 산모에게 지급하는 출산일시금으로 충당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본 정부는 산모에게 지급하는 출산일시금을 기존 35만엔에서 보험료 3만엔까지 포함해 약 38만엔으로 확대했다.

일본은 여기에 더해 '무과실보상제'의 적용 범위를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전체 진료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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