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석(단국대의대 의료윤리학교실)

■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 거부하는 환자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실려 온 40대 남성 K씨를 검사해보니 신장과 비장이 파열되어 뱃속에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즉시 수혈과 응급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칫 생명이 위급하여 수술 준비를 하는데, 환자의 주머니에서 ‘응급상황에 절대 수혈 불가’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가 발견되었다.

환자는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죄악시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이런 자필 서명의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아직 보호자는 연락이 되지 않고 환자의 혈압은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는데, 담당 의사의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앞으로 의사가 되면 닥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어 주시니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만일 제가 이 환자의 담당의사라면 우선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서 환자를 살려놓고 볼 것 같습니다. 환자가 종교적인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한다고 하지만, 의사의 양심상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환자가 현재 의식이 있고 완강하게 수혈을 거부한다면 더 상황이 곤란하겠지만, 다행히(?) 의식이 없는 상태이므로 먼저 목숨부터 살려놓고 신앙에 관한 토론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K의대 본과 3학년 J씨)

참 어려운 상황이네요. 제 생각에는 그래도 환자를 먼저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경우 그냥 기다리면 환자가 의식이 깨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 뻔한데... 하나 뿐인 목숨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과거에 서명한 카드 한 장으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 위험천만한 일 아닌지요.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혹 마음이 변하여 살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 종교라는 것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먼저 살리는 쪽으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라면 환자에게 강제로라도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할 것 같네요. (잠실에 사는 주부 L씨)

■ 긴 고민, 간략한 조언

과거 권위주의적인 의료관행하에서는 치료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의사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질병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의사가 시키는데로 약을 먹고, 수술하라면 그냥 수술하고.... 궁금한게 많아도 워낙 바빠보이니 제대로 물어볼 수도 없고... 그저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의사가 알아서 할 것이 아니라 단지 정확한 정보만 요구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의견을 모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내 몸에 대한 일이므로 내가 결정하겠다는 환자들의 당연한 요구인 것이지요. 이렇게 환자의 자율적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대 의료행위와 수반하여 발생하는 윤리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원리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갑상선에 혹이 생긴 갑상선기능항진증 환자의 경우 수술과 약물치료, 방사성약물치료 등 몇 가지 치료방법이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간편한 방법이지만 1년 이상 약을 먹어야하고 재발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수술은 단번에 해결이 되지만 기능저하증이 초래되기도 하고 목에 흉터가 남는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방사성약물치료 역시 기능저하증이 흔하다는 단점이 있구요. 이 경우 어떤 치료방법을 택할 것인가는 (당연히) 환자가 결정할 일입니다.

만일 미혼 여성인 경우라면 미용적인 이유로 수술보다는 약물치료를 원하겠지만, 매일 약을 챙겨 먹기가 어려운 바쁜 중년의 사업가라면 수술을 선호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각각의 치료법에 대한 장단점은 의사가 잘 전달해야 하겠지요.

만일 의사가 고의적으로 자신이 익숙한 치료만을(내과의사는 약물치료, 외과의사는 수술) 권한다면 환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야말로 환자의 자율적 결정의 기본 전제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전제는 환자의 정서와 판단능력이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환자가 지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우울증, 정신분열증, 치매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자율적 결정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치료계획과 환자의 결정이 일치하는 경우에는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일이 별 문제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이번 사례처럼 환자가 의사의 치료에 완전히 반하는 결정을 내리고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더구나 대량실혈로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수혈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은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욱 그 결정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의견을 주신 분들도 대부분 먼저 환자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의견을 주신 것일테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례가 실제 캐나다에서 있었고 수술 후에 살아난 환자는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긴 커녕, 법정에 고소해버렸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어떠했을까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캐나다 법정은 수술을 감행한 의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치료행위를 상해죄로 보아야 한다는 법원의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서구에서는 환자의 자율성은 (비록 그 결정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할지라도) 지켜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환자의 자율적 결정과 의학적 결정이 충돌하는 상황은 의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쉽지 않은 딜레마 상황이랍니다.  

■ 이달의 딜레마 사례 - 기형 갖고 태어난 신생아의 양육을 포기한 부부

결혼 후 3년만에 어렵게 가진 아기를 6개월만에 조산한 부부의 아기가 다운 증후군으로  진단되었다. 심장에도 기형이 있어서 수술이 불가피하고, 지능도 정상보다 몹시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근근히 목숨을 유지하는 아기를 며칠간 바라보던 부부는 의사선생님께 치료중단과 퇴원을 요구하였다. 치료비도 그렇고 아이의 장래를 고려할 때 더 이상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퇴원하면 아이는 심장문제와 미숙아의 문제로 인하여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러한 경우 의사는 부부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딜레마 사례'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 drloved@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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