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의료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지난 5년간 한국의 의료비 증가율은 OECD 국가들의 평균치보다 2.7배 높은 수준이다.

노인인구의 빠른 증가가 이러한 의료비 증가속도를 설명하는 원인으로 흔히 거론되지만 약제비와 의료비 증가속도는 노인인구 증가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석결과이다. 그렇다면 의료비가 증가하는 만큼 국민들은 더 좋은 의료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K 씨는 70세 남성이다. 15년 전에 고혈압을 진단받고 근처 내과의원에서 약을 복용 중이었는데, 최근에 비뇨기과를 방문해 전립선비대증을 진단받고 고혈압 약물과 더불어 전립선비대증 약도 함께 투약하였다가, 어지럼증을 자주 느끼고, 일어나다가 쓰러진 적이 몇 번 있어 큰 병원을 방문하였다.

방문 결과 평소 복약 중인 고혈압 약물과 전립선비대증 약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기립성저혈압이 발생하였다는 얘기와 함께 전립선비대증 약물의 용량을 줄이기로 하였다. 어지럼증 원인 진단을 위해 발생한 수십만 원에 이르는 진찰료와 검사비용은 고스란히 K 씨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몫이다.

Y 씨는 75세 여성이다. 처음 당뇨병을 진단받고 투약 중이었는데 이후 고혈압, 골관절염, 골다공증 등 추가로 3개의 만성질환을 더 진단받아 현재 4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대학병원 한 곳과 동네 의료기관 한 곳 등 2개의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있다. Y 씨가 각 질병별로 개발된 표준진료지침에 따라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은 6가지에 달한다. 관절보호하기, 섭취하는 열량 조절하기, 운동하기(하루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하기, 근력운동하기, 관절운동 하기), 발을 보호하는 신발을 골라 신기, 과다한 음주하지 않기, 적절한 체중 유지하기 등등.

그를 진료하는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예방접종(폐렴, 독감 예방접종)부터  혈압 및 혈당 측정하기, 소변 및 혈액 검사, 물리치료, 안과검사, 골밀도 검사, 환자 교육 등. Y 씨나 보호자가 이 많은 사항들을 누군가로부터 교육받고 해당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며 확인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러한 사항을 교육해주는 누군가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K 씨의 상황을 고려해 그가 방문하는 내과의원의 의사가 고혈압과 전립선비대증 약물을 동시에 진료하고 약물을 처방할 경우 고혈압만을 진료하는 경우에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환자가 요청하지 않는 건강문제까지 포함하여 진료해야 할 의무도 없다.

또한 K 씨도 다소 추가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전립선비대증은 비뇨기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내과의사에게 전립선비대증 진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Y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대학병원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들이 대신 대학병원을 두 달마다 방문하여 관절염과 골다공증 약물을 처방받는다.

K 씨와 Y 씨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최근 국내 한 연구에 의하면 70세 이상 남성 5명 중 3명은 2개 이상 만성질환에 이환되어 있고, 70세 이상 여성 2명 중 1명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 한국의 의료서비스와 의료제도는 급성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발달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속적으로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만성질환, 특히 여러 만성질환에 동시에 이환된 이들에게 보다 효과적, 효율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다 중요해졌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과 같이 여러 진료과가 협력하여 진료를 하면 여러 만성질환에 대한 종합적인 진료가 가능하겠지만 개인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해야할 의료비 수준은 동네의원에서 진료하는 경우에 비해 몇 배에 달한다.

결국 가까운 동네의원의 주치의가 여러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환자를 진료하고, 꼭 필요한 경우 큰 병원이나 다른 전문의료기관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전체 의료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고, 아울러 개인이나 사회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복잡한 건강문제를 다루는 주치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들의 상태를 더 잘 파악해야 하고, 환자와 주치의의 진료과정에서 필요한 시간과 노력도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우리 동네 주치의가 실력을 맘껏 발휘하며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그 때를 기대해본다.

유원섭은?

1998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졸업2001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석사(보건정책학 전공)2002 예방의학전문의 취득2005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의료관리학 전공)2002. 9~2011. 8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2011. 9~현재 충남대병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