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향후 10년간 의료기기 분야에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10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최근 1~2년간 디지털진단방사선쵤영장치를 비롯해 혈액검사기기, 의료영상저장전송장치 등 다양한 의료기기 제품의 허가를 획득, 관련 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작년엔 국내 1위의 의료기기 전문업체 메디슨을 인수함으로써 의료기기 사업 진출을 위한 든든한 교두보도 확보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내에 의료기기사업팀 조직도 확대·신설했다. 이 사업팀의 인력 규모만 2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내 의료기기업체의 약 80%가 직원수 100명 이하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 진출이 현실화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전체 의료기기시장의 규모가 확대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단기속성 '스피드 경영'이 먹히지 않는 의료기기사업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4년 미국 GE와 합작 형태로 ‘삼성GE의료기기’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 시기에 GE와 결별하면서 의료기기사업에서 손을 뗐다.

만약 삼성전자가 GE와 결별하지 않고 지금까지 의료기기사업을 계속 유지해 왔더라면 어땠을까. 최근 10년간 의료기기 분야의 기술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아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의료기기사업이 단기간내 시장에 안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처음부터 너무 큰 경영목표를 수립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삼성전자의 경영 방식을 감안할 때 향후 의료기기사업에서 기대했던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 사업 자체를 폐기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걱정이다.

▲ 삼성전자가 개발한 디지털엑스레이촬영장치.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 장비는 개발 이후에도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장기간의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제품이 출시되더라도 의료기관에서 곧바로 신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일정 기간 동안 테스트 운용을 거쳐 안정성과 유효성이 확인될 때 비로소 최종 구매로 이어지는 관행을 감안할 때 신제품 출시 이후 의료기관에 보급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기 제품 개발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따져볼 때 과연 삼성전자가 목표한대로 오는 2010년까지 10조원의 매출달성할지 의문이다.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생산 수입-수출)는 총 3조 9,027억원이다.

분명 내수시장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기기사업에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총매출 10조원을 달성한다는 삼성의 목표가 버거워 보이는 이유다.  

의료기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RSNA(북미방사선학회)에서 만난 외국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 진출을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며 “아무리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의료기기의 특성상 다른 전자제품처럼 단번에 시장에서 반응을 얻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기기업계 생태계 파괴 우려

삼성전자의 헬스케어사업 진출이 우려되는 또 다른 대목은 그동안 전문 전문업체 중심으로 성장해온 의료기기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가 의료기기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원천기술을 확보한 전문업체를 속속 인수하는 것은 물론 전문 연구개발 인력도 상당수 스카우트 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전자가 개발한 혈액검사기기.

의료기기 분야는 가뜩이나 연구개발 인력이 부족하다. 여기에 삼성의 대규모 인력 확충이 더해져 일부 전문업체들은 R&D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신제품 개발 등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의료기기 제품 판매에 나서고, 시장선점에 박차를 가할 경우 중소 전문업체들의 인력난과 경쟁력 약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기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장기적인 전략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원천기술을 확보한 전문업체를 인수하는 골몰하다가 나중에 수익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수출 뿐

삼성전자가 의료기기사업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수출에 주력하는 수밖에 없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수출규모는 총 14억5,436만달러(1조6,816억원0으로, 특히 초음파의료기기가 3억08,63만달러로 전체의 21%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디지털엑스선촬영장치의 수출도 급증해 2010년에 4,511만달러로 전체 수출 품목 중 9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삼성메디슨의 초음파진단장비와 이미 품목허가를 마친 디지털엑스선촬영장치 수출에 집중할 경우 나름대로 상당한 매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메디슨 창업자인 이민화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삼성전자가 의료기기사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민화 이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의료산업이 세계화하려면 필요한 것이 글로벌 네트워크와 브랜드, 자금력 등 세 가지가 필요한데 삼성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기업”이라며 “한국의 의료산업이 단독으로 세계에 진출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이 글로벌 파워와 브랜드를 앞세워 (의료산업을)밀고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의료산업의 전 세계 시장 규모가 5조 달러에 달한다. 반도체와 조선업의 수십 배 규모”라며 “그 산업을 우리가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한국 전체의 문제다. 앞으로 의료산업에서 반도체와 조선업 정도의 수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