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계기로 이른바 '무상시리즈'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무상급식 도입이 속속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상의료의 경우 만만찮은 재원부담과 국내 의료공급체계 등을 따져볼 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가운데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이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총 15회 연속으로 정책 대안마련 워크숍을 시작했다. 양 단체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무상의료 도입의 전제조건인 '공공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 개편'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본지는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을 현장 동행하며 과연 국내 의료환경에서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상의료 도입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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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국회본회의에서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 전부개정법률안(공공보건의료법 전부개정안)’이 가결됐다.

이 법안의 주요내용은 의료취약지 주민에게 적정한 보건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인력 및 장비를 갖추었거나 갖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민간 의료기관을 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국·공립병원으로만 한정됐던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민간병원으로 확대해 의료취약지에 대한 공공의료 강화와 수익성이 낮은 민간병원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책 실현에 앞서 현재 민간 중소병원의 실태를 기반으로 확실한 목표설정 및 구체적 지원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지난 5일 서울 면목동에 위치한 서울 녹색병원에서 ‘민간 중소병원, 활로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의료공급체계 개편 10차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박형근 교수는 “민간중소병원을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병원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중소병원에 대한 분명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소병원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일정 기간 경영상태의 현상유지를 지속하는 수준으로 갈 것인지, 중소도시 및 군지역 취약계층 진료를 중심으로 한 구호병원으로 전환시킬 것인지, 아니면 지역주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지역거점병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설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중소병원을 경쟁력있는 지역거점병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며 “이를 위한 세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을 병행해 나가야 대도시 중심으로 편중된 병원 인프라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중소병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의료계의 군비 경쟁(Medical Arms Race)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형근 교수는 “보장성이 높은 의료보험 덕분에 환자들이 의료비의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병원시장 진출 및 전문병원들의 약진이 상대적으로 민간중소병원의 위기를 야기시켰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재벌병원’들이 병원의 고급화․전문화․대형화 등 서비스 차별화를 무기로 10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부상했다”며 “이로 인해 환자 유치 경쟁이 심화되고 시설 및 인력 등의 차별적 우위에 기초한 환자 유입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재벌병원들에 자극을 받은 기존 병원들 역시 고급화와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경쟁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의료원가 및 환자가 부담할 의료비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민간 중소병원들은 상대적으로 환자유치 경쟁에서 밀려 퇴보 국면에 접해있다.

민간 중소병원은 지속적인 병원 및 병상 공급 증가로 인해 내원환자가 감소하고 있으며 시설, 장비, 인력 등에 적지 않은 투자 재원이 소요됨에 따라 공격적 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도 쉽지않은 상황이다.

박형근 교수는 ▲부족한 의료인력으로 인한 서비스 질 저하 ▲상대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임상 진료수준 ▲낙후된 간호 서비스 제공체계 ▲병원 운영 및 발전에 대한 취약한 리더십 등을 민간 중소병원이 가지고 있는 서비스 역량의 한계로 꼽았다.

정부의 제한적인 정책 역시 민간 중소병원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병원 및 병상 공급 증가에 관한 무규제, 환자의뢰체계 붕괴, 대형병원 대비 동일 질환의 낮은 수가를 비롯해 민간 중소병원 활성화를 위한 정책 부재 등이 민간 중소병원의 퇴보를 부채질 하고 있다는 것.

박 교수는 “민간 중소병원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공급체계에 대한 규제와 지원방안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며 “환자유입을 위해 1차의료와 연계한 환자의뢰체계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민간 중소병원 지원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력확충과 조직 역량제고에 소용되는 운영비가 핵심 대상이 돼야 한다”며 “이같은 과제 해결이 선행돼야 중소병원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남은우 교수는  세계보건기구가 ‘오타와 헌장’에 기초해 도입을 권장하고 있는 건강증진병원을 소개했다.

남 교수는 “건강증진병원 현황으로 유럽에서 35개 지역적 네트워크에 708개 병원이 활동하고 있다”며 “건강증진병원들은 18개 주요전략을 통해 병원 직원, 환자, 지역사회에 건강증진 개발과 건강증진을 위한 전략적 위치를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증진병원 기준은 관리정책, 환자평가, 환자정보개입, 건강한 일터 장려, 지속성, 협력 5가지로 지난 2000년부터 국내에서도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최근 건국대의료원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건강증진병원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는 “국내 민간 중소병원들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21세기형 병원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병원 직원과 환자 모두가 건강해지고 만족하는 건강증진병원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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