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보건복지부는 500인 미만의 의료취약지역(도서지역은 300인 미만)에서도 보건진료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도록 한 농어촌등보건의료를위한특별조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를 통해 보건진료소 예산을 확충해 보건진료소 양을 증가시키겠다고 밝혔다.

물론 의료취약지역 주민 등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겠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보건진료소의 양적 확대만으로 의료공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내 1차의료기관과의 경쟁과 갈등을 조장해 지역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200개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보건진료소가 운영 중인 곳도 있으며, 이로 인해 보건진료소와 의료기관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농어촌 지역의 개발과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돼 무분별한 보건진료소 확충은 그동안 문제가 된 보건진료소의 불법의료행위, 약물 오․남용 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가 더 커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역할 재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에서는 공공의료 확충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도시형 보건지소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보건지소의 경우 보건소와 마찬가지로 1차진료를 하고 있으며, 그 대상도 특별히 제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65세 이상의 노인, 의료급여 수급권자, 장애등급 1~3급의 환자에 대해서는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으며, 나머지 환자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증이 있는 경우 본인부담금과 물리치료비 500원, 검사비로 1,100원을 받고 있다.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일반진료 확대는 건강보험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뜩이난 열악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을 위협하고 있다.

의료접근성과 1차 의료기관의 의료 인프라가 뛰어난 현실에서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미명하에 보건지소를 확대하려는 것은 1차의료 활성화를 통해 무너져가는 동네의원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상충된다.

오늘날 의료취약계층이라고 한다면 의료기관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읍․면단위 지역, 즉 격오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된 의료기관이 없는 격오지라면 당연히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가 필요하겠지만, 도시 지역에서 의원급 의료기관 대신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는 민간의료기관이 신속히 대응할 수 없는 1차보건의료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보건소에서 일반진료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의료접근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혈세를 보건지소 확충에 쏟아 붓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보여진다.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는 일반진료를 위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국민보건의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운영되는 것이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는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를 선심성 행정의 도구로 활용하기 보다 의료계와의 진지한 협의를 통해 지역 주민이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으며, 아울러 본인부담금 면제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관련법령에 대한 재정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60년 만에 찾아온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이하여 용의 정기를 받아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