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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만나다] 老의사, 시속 220km로 1천미터 창공을 날다
  • 글.사진 정무창 기자
  • 승인 2012.01.0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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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어렸을 적에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진짜로 하늘을 날아보자고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하늘을 날고 있는 건 저 하나뿐이에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이 거든요”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김동호 교수(61)는 정말로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의사다. 국내 의사 중 유일하게 미국과 한국의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25일, 김 교수가 조종하는 경비행기를 직접 탑승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김동호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는 기상환경이 조금만 악화돼도 운항하지 못한다며 인터뷰 당일 오전에 전화를 달라고 했던 김 교수의 말이 떠올라 운항확인을 해야 했다.“교수님. 오늘 비행하시나요?”. 수화기 저편에서  “네. 비행합니다”라는 김 교수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10시 30분에 김포공항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27분이었다. 2층 안내데스크 앞에서 김 교수를 기다린지 10여분, 2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검정색 중절모가 불쑥 올라왔다. 중절모 뒤로는 말총머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진동으로 흔들거렸다. 김 교수는 검정색 가죽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회색 롱코트를 펄럭이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주차장을 잘 못 들어가 조금 늦었다며 멋쩍은 듯이 웃었다.김 교수의 첫인상은 서부 영화의 카우보이를 연상시켰다. 일반적으로 의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반듯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옷차림과 외모였다. 기자의 시선이 말총머리를 따라가자 김 교수는 당연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자라는 머리를 자를 필요가 없어요. 선조들을 봐도 긴 머리를 멋지게 하고 다니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그는 교육을 위해 미국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끝에, 2000년 꿈에 그리던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남자라면 누구나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에요. 우연한 기회에 뜻이 통하는 지인들과 진짜로 하늘을 날아보자고 모임을 만들었어요. 우선 경비행기 교육원에 등록을 해야 했는데 그 당시 한국에는 그런 교육기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경비행기 교육원에 등록했죠. 초반에는 지인들과 비행교육을 함께 받았어요. 그런데 바쁜 일상 때문인지 하나 둘씩 포기하더군요. 결국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저 혼자에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거든요”자격증을 취득한 김 교수는 아예 경비행기를 구입했다. 비행 스케줄을 잡고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의 총 비행기 운항 시간은 400시간이 넘는다.“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 후 곧바로 경비행기를 한 대 구입했어요.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스케줄을 잡고 기다려야 하는데 병원 일이 없는 날과 비행하는 날을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그 때 참 많이 날아다녔어요. 인천, 목포, 제주, 대구, 김해, 청주 등 대한민국 공항이 있는 곳은 모두 경비행기를 타고 갔다 왔죠”
바람은 지면을 타고 파도처럼 흐르고…비행장으로 나가는 길에 비행교관이 합류했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을 갱신하려면 교관과 함께 비행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경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경비행기 5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는 도중에 김 교수에게 운동 마니아라는 소문에 대해 물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려면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몇 시간씩 수술을 집도해야 할 경우가 생기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 운동하는 것이죠. 어제도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어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하하하”잠시후 ‘CESNA - 172SP’라는 명칭의 4인승 단발 경비행기인 HL1106호 앞에 도착했다. 비행기문을 열고 올라탔다. ‘이제 출발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비행 전 기체검사와 계기판 검사를 비롯한 실내 검사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계기판은 비행과 관련한 수치를 알려주는 기기들로 빈틈이 없었다. 브레이크, 헤드셋 등의 검사가 끝나니 관제탑에서 연락이 왔다.
“HL1106, HL1106...치익” 기자도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제탑과의 통신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주로 비행기 안전점검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행교관이 문제가 없다고 관제탑에 송신하자 곧이어 출발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김 교수가 시동을 걸었다. ‘쿵쿵~쿵’ 멈춰있던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관제탑과 몇 번의 통신이 더 오간 뒤 경비행기는 L38활주로 위로 올라섰고 비행기는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가속 페달을 밟자 비행기는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나갔다. 잠시 후 수평으로 지나쳐가던 건물과 땅이 시야 밑으로 가라앉았다. 비행기가 이륙에 성공한 것이다.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왼쪽으로 급하게 항로를 틀었다. 경비행기를 처음타본 기자는 기체의 흔들림과 급격한 움직임에 놀랐다. 기체가 요동칠 때면 놀이동산에서 위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경비행기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기체의 흔들림이 유난히 심하죠. 바람은 지면을 타고 파도처럼 흐르기 때문에 산처럼 울퉁불퉁한 지형 위를 날아가면 기체가 요동칠 수밖에 없답니다”
20분 정도 서남쪽으로 비행을 하자 기체 왼쪽으로 서해 바다가 보였다. 꽤나 멀리 날아온 듯했다. 김 교수와 비행교관은 경비행기 조종에 열중이었다. 고도를 2,000피트로 유지했다가 3,600피트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며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120노트(시속 약 222km)의 속력으로 날기도 했고 80노트의 속력으로 줄이기도 했다. 기자는 아랫배의 울렁거림을 참으며 비행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륙한지 30분이 지나자 비행교관이 돌아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예정된 비행시간이 한 시간 이어서 이제 돌아가야 했다. 비행기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의 훈련이 계속됐다. 비행교관은 김 교수에게 계기판을 보고 운항하라고 말하는 등 주의사항을 계속 알려줬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 앞 창문으로 김포공항의 활주로가 보였다.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며 활주로에 가까워졌다 . 새끼손톱 만하던 아파트 들이 점점 제 크기로 돌아왔다. 비행기 속도가 줄어들었고 잠시 후 ‘끼~익’하며 멈춰있던 바퀴가 땅과 접촉하는 소리를 냈다. 경비행기라 착륙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처음 출발할 때 이용했던 L38 활주로 입구로 되돌아 왔다. 이륙할 때 갔던 길을 되돌아 처음 비행기가 정박해 있던 곳에 멈췄다. 헤드셋을 벗고 짐을 챙겨 경비행기에서 내리니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먼저 반겼다.
이륙하러 지나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2층 안내데스크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 가방에서 검정색 노트를 꺼내 함께 탑승했던 비행교관에게 건냈다. 운항일지였다. 일지에는 운항기록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운항일지 체크를 마치고 비행교관과 헤어졌다. 오늘의 비행이 끝난 것이다.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특별하게 계획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생활하는 거죠. 의사 일을 계속하는 이상 경비행기 조종이던, 운동이던 지속할 예정입니다. 제가 건강해야 환자의 건강도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비행을 마친 김 교수는 경비행기 조종사에서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로 돌아와 있었다.공항청사 밖으로 나가는 길에 김 교수에게 물었다. “어제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오늘도 비행하면 언제 쉬시나요?” “이제 집에 가서 쉴 예정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때 김 교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같이 수영을 하러 가자는 지인의 전화였다. 운동 마니아라는 소문이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공항청사 앞 횡단보도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글.사진 정무창 기자  crom724@rappor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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