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용진 교수(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정책이 저질 코미디로 전락하고 있다. 배우 중에 소비자단체나 의사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국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 이익단체‘약사회’와 그 파워에 전전긍긍하는‘복지부’만 출연하는 삼류 코미디다.

이 코미디가 끝나면 소비자단체는 약사님들에게 머리 숙여 ‘슈퍼에서 무엇을 팔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한다. 의사들은 의학이란 과학의 종합성과 그들이 전문성이 위대하신 약사님이나 그 가족들의 약 판매에 대한 전문성보다 못하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약사님들께서 슈퍼로 내놓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해야 한다.

심지어 이런 겸손한 물음을 약사님들께 올리기 위해서는 약사님들이 국민건강만을 생각하시도록 보호해 주시는 보건복지부에게 허락부터 받아야한다는 것이 이 코미디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이 코미디에는 단역배우들도 등장한다. 하나는 그 동안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반대하면서 약사회 로비를 받으신 적 없고 국민건강을 위해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으시던 주승용(민주당), 양승조(민주당), 원희목(한나라당), 윤석용(민주당), 곽정숙(민노당) 국회의원님들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건강을 위해 목숨 걸 태세로 반대하시던 ‘건강사회를 위한...’ 시민단체님들이다.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대사가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 저질 코미디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추측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추측은 약사회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국구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보통 대한약사회장 출신이나 시도 약사회장 출신이 공천을 신청하는데 이들 대부분 머리띠를 묶고 슈퍼판매 반대를 외치며 혈서를 썼기 때문에 양당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지속적인 슈퍼판매 반대로 시민사회단체나 언론과 충돌하게 될 경우 지역구로 출마하는 약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경선과 본선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할 경우 그 부담은 약사회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단체가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슈퍼판매 찬성을 위한 서명운동이라도 시작하는 날에는 약사회는 뺏지(배지)도 잃고 슈퍼판매도 지킬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하다.

지금까지 약사회의 정치력은 국회에 진출해 있는 약사출신 국회의원들의 정당과 이념을 뛰어넘는 위대한 단결력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약사회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선거기간에 표와 돈으로 세몰이를 통해 잃어버린 정치력을 회복한다는 작전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약사회의 꼼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복지부는 편의점을 생각하지만 약사회는 특수장소 즉, 소방서나 파출소를 생각하는 것 같다. 복지부는 소화제, 해열제, 종합감기약을 최소 몇 가지씩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약사회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 뻔한, 다시 말해 그 약 먹고 안 들어서 다시 병원에 가거나 약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약 한 두 가지만을 생각하는 눈치다.

약사회는 일단 합의하는 척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총선을 넘기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나서 2분류 체계를 고수하고 전문약을 일반약으로 많이 전환시킨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긴장하면서 진정성 있게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꿩 먹고 알 먹을 속셈이다.

문제는 보건복지부다. 약사 주연배우야 워낙 이재에 밝은 분들이니 이런 계산을 한다 치지만 복지부는 도대체 정책추진을 위한 의사결정 절차에서 국민과 다른 전문가들은 아예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국민들과 또는 시민사회와 언제 어디서 한 번도 논의해 본 적 없는 안들이 복지부와 약사회의 합의라며 발표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코미디의 가장 큰 변수는 말이 없는 단역배우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로비 안 받았다고 큰소리는 쳤겠다, 약사회가 입장을 바꾼다고 속보이게 따라 바꿀 수도 없을 테니 근심이 많을 게다. 이들이 갑자기 열이라도 확 받아서 반대를 고수하거나 약사회에 반기를 드는 날이면 코미디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본도 연출도 정말 짜증난다. 확 극장을 닫아 버릴 수도 없고 말이다. 얼마 전 종영된 한 드라마에서 세종대왕이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하신 말씀들이 깊이 공감된다. ‘젠장,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권용진은?

전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 겸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연구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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